고은 시인 “1970년대, 문학과 역사가 동의어라 생각하며 살았지요”
입력 2013-01-07 19:49
유신시대 일기 ‘바람의 사상’-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 펴낸 고은 시인
“육영수 끝내 숨졌다. 그 긴 치마. 그 웃음. 그 비정치적 기품.”(1974년 8월 15일) “영구차가 떠날 때 대통령은 청와대에 혼자 남겨졌다. 권력은 슬프도다.”(1974년 8월 18일)
유신 시대의 한복판이라 할 1970년대의 일기 ‘바람의 사상’(1973∼77)과 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한길사)을 낸 고은(80) 시인이 7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내 문학은 현재 진행 중이므로 일기로써 존재 증명을 삼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요즘 사람들이 70년대의 풍경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그때의 고민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운을 떼었다. 60년대 말부터 일기를 써왔으나 잦은 가택 수사 등으로 다른 곳에 보관하기도 했다는 그에게 70년대는 어떤 의미일까.
“그때는 문학과 역사가 동의어라고 생각하며 살았지요. 역사는 저쪽에, 문학은 이쪽에 놔두고 갈라놓을 필요가 없었어요. 한 밥상 위의 반찬 같은 것이었지요. 70년대는 처녀로서의 순정 그 자체였습니다. 숙련된 눈으로 봐야 파악되는 시대가 아니라 그냥 울고 웃던 시절, 청진동의 그 삐거덕거리는 술상 같은 것이었지요. 내 문학적 고향은 ‘폐허’였던 50년대가 본적지이고 그 시작점은 70년대이지요.”
‘바람의 사상’은 순수문학을 지향했던 시인이 어떻게 역사의 풍랑에 휩싸이면서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문학가가 되어가는지 정밀한 다큐멘터리처럼 기록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흔들리는 배인가. 긴급조치 1호 4호 해제 때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등 다 석방했어야 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 괴상한 고립주의로 치닫고 있다. 표독한 고집은 정치의 하급이다.”(1974년 10월 15일) “시대는 넘을 수 없는 암벽이다. 넘을 수 없는 것을 넘어야 하는 것이 그 시대의 사명이다.”(1975년 3월 10일)
그는 지난달 대통령 선거 결과에 관련한 질문을 받고 “새해인 만큼 덕담을 해야 하지 않느냐”며 짧게 언급했다. “(여야 대선 후보의) 득표율이 51.6%대 48%면 사실 50대 50이나 마찬가지지요. 이건 놀라운 간극입니다. 박근혜 당선인이 사회통합의 과제를 들고 나왔지만 사실 사회통합은 사후의 명제일 것이므로, 우선 마중물을 띄워서 국민들에게 ‘내일’을 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많은 문제가 닥칠 것이므로 2월 말까지는 덕담이나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웃음). 유럽 셈족의 인사법처럼 서로 축복을 교환하는 게 낫겠습니다.”
배석한 ‘두 세기의 달빛’ 대담자인 소설가 김형수는 이 저서에 대해 “20세기와 21세기라는 시간의 두 대륙을 종주한 것의 위대함이 담겼다”며 “고은 시인의 문학적 원형을 가장 선명하게 부각시킨 정신적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고은 시인은 올 상반기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을 예정이며 5월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시 축제에 참가할 계획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