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김유나] 아기도 지켜주지 못하는 법이라면…

입력 2013-01-07 21:28

지난 5일 새벽, 서울 신림동 주사랑공동체교회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곳은 영아가 길거리에 버려져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아이를 보관하는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곳이다. “김 기자, 아이 두 명이 또 버려졌어요.” 입양특례법으로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다는 기사를 쓴 직후였다.

새해 들어 하루 사이 두 명의 아이가 버려졌다. 아이를 버린 엄마는 메모에 ‘기관에서 아이를 받아주는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고 적었다. 지난 8월 시행된 개정 입양특례법 탓이었다. 입양을 하려면 태어난 아이를 자신의 호적에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입양이 성사되면 아이는 호적에서 지워진다. 하지만 한 미혼모는 “잠깐이지만 기록이 남는다는 사실이 무섭다. 입양에 실패하면 평생 기록이 따라다닐 수 있어 겁난다”고 했다.

아이를 버린 엄마들의 편지에는 처절한 사연들이 담겨 있었다. 사실 편지를 읽기 전까지는 그들을 ‘엄마’라고 부르기도 싫었다. 강추위에 갓 태어난 아이를 버린 그들은 ‘엄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편지 속 그들은 ‘엄마’였다. 아이를 버리고 싶었던 엄마는 없었다. 새로운 가정에 안겨주려 했으나 제도의 벽에 부닥쳐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아이가 자신보다 좋은 부모를 만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그러나 현실의 법에 기댈 곳은 없었다.

아이를 직접 입양한 부모들조차 이 법을 반대하고 나섰다. 미혼모가 낳은 딸 아이를 입양했다는 한 엄마는 “법 개정 전에 아이를 입양하려 했다면, 미혼모인 생모가 지금의 딸을 유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입양도 불가능 했을 거다. 내 삶의 전부가 된 이 아이를 ‘법’ 때문에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섬뜩하다”고 말했다. 입양 부모 단체 한 관계자는 “‘법’이 한 명의 아이라도 지키지 못한다면 죽은 법”이라고 토로했다.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정상 아이들은 보호시설로 가게 된다. 부모는 아이를 버리며 좋은 부모를 만나길 바라지만 이 아이들은 입양되지 못해 보육원에서 자랄 확률이 크다. 법 개정 전이었다면 입양 기관을 통해 새 부모를 만났을 아이들이지만 법 때문에 아이들의 미래가 바뀐 것이다. 버려진 아이들은 친부모의 ‘뿌리’도 모른 채 자라야 할 처지다. 심지어 자신이 태어난 날조차 모른 채 버려지는 아이도 있었다. 국민일보는 7일자에 아이 20명의 사진을 실었다. 모두 입양특례법 때문에 버려진 아이들이다. 사진 속에 곤히 잠든 천사 같은 아이들은 왜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거리로 내몰려야 하나.

사회부 김유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