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영석] 셰리프 실험의 교훈
입력 2013-01-07 18:53
“극에 달한 분열상… 상대방 인정하고 모두가 힘 합칠 때 난국 극복할 수 있다”
사회심리학자 무자퍼 셰리프가 1954년에 수행한 집단 간 갈등과 협동에 관한 연구는 이 분야의 기념비적 업적으로 손꼽힌다. 연구가 진행됐던 지명의 이름을 따 일명 ‘로버스 케이브 실험’으로도 불리는 이 현장 실험 연구는 크게 두 주제를 다루었다. 첫째는 집단 간의 경쟁과 갈등이 상대에 대한 편견과 적대감을 어떻게 증가시키는지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형성된 증오감과 반목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 실험을 위하여 각 11명으로 구성된 두 집단이 오클라호마주의 한 주립공원에서 독립적인 캠프를 꾸리도록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두 집단이 조우하도록 만들고 서로 간에 경쟁 상황이 이어지도록 상황을 세팅했다. 끊임없는 집단 간 경쟁 속에서 보상은 이긴 집단에만 주었다. 유한한 자원에 대한 승자 독식 경쟁체제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우리 대 그들’이라는 경쟁의식을 촉발시킨 것이다.
집단 간 경쟁이 격렬해지자 그에 비례하여 각 집단 내 구성원들 간의 유대감도 더욱 강화되었다. 스스로 정한 규칙을 철저하게 준수함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지도자를 향한 충성심도 더 강해졌다.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강해지는 만큼 상대 집단을 향한 적대감이나 편견은 더욱 노골화되었다. 비난 낙서나 반대편 집단의 깃발을 훼손하는 수준에 머물던 초기의 적대감이 급기야 상대 진영을 급습하고 린치를 가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됐다.
부득이 연구자들이 개입해 인명이 살상되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극도의 적대감을 어떻게 누그러뜨릴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 연구의 백미가 되는 후반부 주제였다.
연구자들은 처음에 두 집단이 같은 공간에 섞여 생활을 하면 시간의 경과와 함께 적대감이 없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반대로 서로 어울리기는커녕 오히려 사사건건 싸움만 벌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우리 대 그들’이라는 편 가름에 기초한 앙금이 단순한 접촉과 어울림만으로는 해소되지 않았던 것이다. 같은 문제를 놓고 생각과 해석방식이 너무 다르다보니 상대에 대한 편견과 불신만 더 강화될 뿐 상호이해의 감정이 싹트지 않았다.
결국 이 연구는 두 집단이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당면한 난관을 절대 극복할 수 없다는 공동체 운명의식이 선행되어야 함을 보여주었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협동하며 노력할 때 비로소 반목의식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도 어찌 보면 셰리프의 실험 상황과 같은 형국이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선거를 전후한 지난 몇 개월간 진보 대 보수의 이념적 싸움으로 우리사회 구성원 간 분열의식은 극에 달해 있다.
승자가 결정되고 다른 쪽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요식행위가 있긴 했지만, 그것은 겉치레일 뿐 집단 간 앙금과 분열의식은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 사회의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 대립의식이 원래부터 이렇게 강했던 것은 아니다. 국민 다수는 이념보다 생활문제에 관심이 더 많다. 과장되고 왜곡된 이념 프레임으로 현실을 바라보도록 강요되고 조정당하다 보니 자신들도 모르게 이념적 편향성에 물들게 된 것이다.
일단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상대에 대한 적대감과 대립의식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마련이다. 자신의 집단과는 필요 이상의 동일시의식을 지니는 반면 상대 집단과는 실제 이상의 과장된 괴리의식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 통합의 과제에 대한 해답도 셰리프의 제언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이 없이는 ‘우리’도 존재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너와 나’ 모두가 힘을 합칠 때에만 대내외적인 난국을 극복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기꺼이 함께 노력할 수 있는 국가적 목표를 지도자가 제시해주어야 한다.
김영석(연세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