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페루 김명수 선교사] (1) “무초 구스또, 인사드립니다”

입력 2013-01-07 18:16


“한국과 많은 것이 반대지만 예수님 안에선 하나”

“무초 구스또!(Mucho gusto!).”

‘만나 뵈어 반갑습니다’, 혹은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의미로 다른 사람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 쓰는 스페인어 인사말이다. 국민일보의 독자분들에게 페루 리마에서 지면으로 인사를 드린다.

무초 구스또!

남미 지역 선교사로 파송된 이래 선교보고를 할 기회가 주어지면 항상 한국과 남미의 다른 점에 대한 이야기부터 먼저 꺼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남미는 반대되는 것이 무척 많다. 한국이 낮이면 이쪽은 밤이다. 한국이 여름이면 여기는 겨울이고, 한국이 추운 겨울이면 이곳은 뜨거운 여름이다. 남미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 가장 하고 싶어 하는 것은 해수욕이다.

한국에서는 남향집을 찾지만 이곳에선 북향집을 찾는다(적도가 지나는 에콰도르 남쪽인 경우). 길거리에서 연인들이 포옹을 할 때 한국에선 남자들이 여자를 감싸 안아 주지만 이곳에선 여자들이 남자를 끌어안고 뽀뽀를 한다.

스페인어에는 ‘당신’, ‘귀하’라는 뜻의 우스뗏(Usted)이라는 경칭과 ‘너’라는 뜻의 뚜(Tu)라는 일반 용어가 있다. 친구나 애인은 물론 ‘뚜’라고 부른다. 부모도 ‘뚜’라고 부르고, 기도할 때도 하나님께 ‘뚜’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자기 아버지보고 ‘너’라고 부르다니’하며 황당해했지만 좀더 알고 보니 뚜는 ‘너’가 아니라 친근한 사람에게 사용하고, 우스뗏은 처음 만난 경우 등 잘 모르는 사람에게 주로 사용한다. 그러니까 부모님께는 당연히 ‘뚜’라고 불러줘야 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도 ‘뚜’라고 부르는 게 맞다.

칠레와 페루에서 22년간 살다 보니 남미 스타일이 한국 스타일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남미가 더 편하게 느껴진다. 내가 변한 것이다. 하지만 20년 넘는 남미의 삶이 나에게 준 또 다른 변화는 남미에 대해 말하는 게 두려워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남미는 이렇다, 저렇다’고 이야기했었는데 해가 지나면서 그게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따라서 이 글 속에서 언급하는 이야기들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라는 것과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린다.

남미 사람들은 대체로 느린 편이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성질 급하기로는 세계 1위일 것이다. 그러니 한국 사람이 남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속도감일 것이다. 하지만 행동이 느리다고 대답까지 느린 것은 아니다.

칠레에서는 무엇인가를 시키거나 요구할 때 나오는 대답이 ‘알띠로(al tiro)’다. 띠라르(tirar)라는 말은 ‘던지다’ ‘발포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알띠로’를 직역하면 총알처럼 즉각 하겠다는 대답이다. 그러니 ‘알띠로’라고 대답해놓고 30분 안에 해놓으면 제법 빨리 처리한 셈이라고 알아야 한다.

그런데 페루에서 ‘알띠로’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물론 페루 리마에서는 많은 사람이 ‘알띠로’란 말이 칠레에서 쓰인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페루인들은 그 말을 안 쓴다. 대신 ‘아오리따(ahorita)’라고 말한다. 이 말은 ‘지금 바로’ ‘금방’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페루에서도 ‘아오리따’ 대답을 듣고도 30분 정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러니 남미에서 ‘알띠로’나 ‘아오리따’만 믿고 기다리다가는 낭패보기 일쑤다. 성질 급한 한국 사람은 속에 불이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오리따’를 즐길 수 있다면 남미 생활 역시 즐거운 삶이 될 수 있다.

칠레와 페루는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 이웃나라인데도 서로 쓰는 단어가 다른 경우가 제법 있다. 하지만 남미의 큰 땅덩어리를 생각하면 그 정도 다른 것은 당연한 것도 같다.

칠레는 남한의 8배, 페루는 남한의 13배나 큰 나라다. 멕시코에서부터 중미를 거쳐 남미의 끝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까지 언어가 같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다. 그리고 언어가 같으면 문화도 비슷해진다. 하지만 동일한 스페인어가 각 나라와 지방마다 약간씩 쓰임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문화도 그렇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언어와 종교와 인종 구성이다.

언어는 스페인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쓰는 공용어는 영어도 불어도 독일어도 아닌 스페인어다. 스페인어를 배워두면 세계 웬만한 나라에서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종교는 나라별로 차이가 있지만 로마 가톨릭이 60∼90%에 이른다. 따라서 거의 모든 나라에서는 국교와 같은 권위를 지니고 있다. 중남미의 로마 가톨릭은 스페인식 가톨릭 신앙에 중남미의 원시종교가 혼합된 또 다른 종교 색채를 띠고 있다.

인종 구성의 경우 메스티조(백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혼혈)가 50%를 넘는다. 케추아어족(잉카족), 아이마라족 등 안데스 원주민이 40%, 그리고 백인계와 소수의 아마존 부족들 및 동양계(중국 일본계 등)가 나머지를 차지한다. 그런데 페루에서 메스티조 및 케추아어족의 구분은 이론상으로는 가능해도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그저 모두가 페루인일 뿐이다. 페루인들과 함께 페루에 살면서 이곳 사람들의 심성이나 문화, 특히 토속적인 종교의 종교성과 부딪힐 때면 내가 페루에 있음을 잊고 만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물론이고 K팝이 페루의 청소년층에 파고들기 전부터 페루인들에게 다가온 것은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였다. 필자는 평소 뉴스 외에는 페루 TV를 잘 시청하지 않는다. 이곳 지상파 TV에서 스페인어로 더빙된 ‘겨울연가’나 ‘대장금’ 등이 방영될 때 나는 페루 신학생들이나 교인들이 말해줄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들의 대화 속에서 한국 연속극과 탤런트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사랑하다’라는 뜻의 띠아모(te amo)를 한국말로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질문까지 받게 되자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이곳 사람들이 왜 이렇게 한국 드라마를 좋아할까?’

한국 드라마에는 분명 특별한 장점이 있다. 순수한 사랑, 주인공의 집념과 끈기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페루인의 다수는 몽고반점을 갖고 태어난다. 페루만이 아니라 북미의 인디언들과 멕시코의 아즈테카족, 마야족, 그리고 칠레의 마푸체족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거의 모두 이 유전자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유전자적 특징을 보이고 있는 부족들의 기층 종교는 무속신앙(샤머니즘)이다. 페루의 경우 ‘꾸란데로(Curandero·치유사)’라고 불리는 무당들의 치유 굿을 비롯해 기복신앙, 어떤 종교든지 받아들이는 수용성 등은 한국의 샤머니즘과 유사하다.

페루 사람은 한국 사람과 다른가. 나의 대답은 두 가지다. ‘예’ 그리고 ‘아니오’다. 그렇다. 우린 서로 다르다.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하지만 같거나 비슷한 것도 많다. 우리는 유전자가 비슷하고, 기본 심성이 비슷하고, 기본 종교가 비슷하다. 나아가 모두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선교를 하러, 페루 교회를 도우러, 페루에 목회자를 세우려고 이곳 페루에 왔다. 그런데 내가 말씀을 전할, 신학을 가르쳐야 할 페루인은 누구인가. 나는 그들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김명수 선교사

·1990년 예장통합 총회 세계선교부 칠레 선교사로 파송

·칠레 선교사(1990∼2002)-산티아고, 콘셉션, 테무고 등에서 사역

·2003년 페루 선교사로 재파송(페루선교회 파송)

·페루 선교사(2003∼현재)

·리마에서 페루장로교신학교, 선한사마리아인 이동병원, 선한사마리아인 보건센터 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