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급증… ‘평생 낙인’ 우려 치료 포기
입력 2013-01-07 17:34
#대학교 4학년인 A(26·남)씨는 군대를 전역한 후 극심한 취업스트레스로 잠을 못 이룬지 벌써 2년째다. 3개월 전부터 약국에서 수면제를 구입해 복용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A씨는 정신과 진료를 받고 싶었지만, 가벼운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도 진단서에 ‘F코드’라 불리는 진료이력이 남는다는 말에 병원 치료를 포기했다.
이처럼 우울증과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정신과 진료이력으로 인한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정신과 상담을 기피하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정신질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성인 6명 중 1명 ‘정신질환’… 상담·치료는 15% 그쳐= 성인 6명 중 1명은 정신건강문제를 경험하고 있지만, 이 중 약 15%만이 전문의를 찾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복지부가 25개 주요 정신질환 유병률, 의료서비스 이용실태 등에 관한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 사람은 전체 인구의 27.6%로, 알코올과 니코틴 사용 장애를 제외하면 성인 6명 중 1명꼴이었다. 그러나 정신질환 경험자 중 정신과 전문의 등을 통해 상담·치료를 받은 비율은 15.3%에 불과해 나머지 85% 정도는 정신의료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선진국인 미국이 39.2%, 호주 34.9%, 뉴질랜드 38.9%인 점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F코드’ 찍히면, 평생 ‘정신질환자’ 낙인(?)= 문제는 현행 정신보건법이 가벼운 우울증이나 불안증세 등 환자 상태의 경중도를 고려하지 않고 정신과 상담만 한 경우에도 ‘정신질환자’로 규정한다는 데 있다. 이에 최근 복지부는 올해 상반기부터 정신보건법상 정신질환자의 범위를 대폭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지만, 시행 시기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 중에서 정신보건전문가가 일상적인 사회활동이 어렵다고 인정하는 사람’ 또는 ‘입원치료 등이 요구되는 중중환자’로 한정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약물처방이 없는 단순 상담의 경우에는 건강보험급여 청구 시 정신질환명을 명기하지 않고 일반상담으로 청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할 방침”이라며 “다만 아직까지 F코드를 대체할 수 있는 청구코드에 대해서는 각 기관간 원활한 합의점이 도출되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평생 낙인찍힐 것을 두려워해 정신과 치료를 기피하는 것은 더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고 조언한다. 김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회적인 편견이나 잘못된 스스로의 인식으로 치료가 늦어지게 되면 자살 등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우울증이라고 의심되면 주저하지 말고 빨리 상담과 전문적인 치료 등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장윤형 쿠키건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