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진원 (6) 1972년 모 기관서 호출 “박정희를 써보시오”

입력 2013-01-07 18:43


영등포 약사회장을 3년 정도 했을 무렵인 1972년 11월, 모 기관의 약사회 담당자가 나를 찾아왔다.

“정 회장, 본부에 들어가 보셔야겠습니다.”

권력기관들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라 덜컥 겁부터 났다.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유신을 선포하고 반대세력과 정면 충돌하던 때였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날 부르는 겁니까” 하고 묻자, 담당자는 “좋은 일이니까 들어가 보세요”라며 웃기만 했다.

그 기관의 본부로 갔더니 간부급으로 보이는 사람이 백지 한 장과 연필 한 자루를 내주면서 ‘박정희’라고 써보라 했다. “한글로 쓸까요, 한자로 쓸까요”라고 물었더니 “한글로는 누가 못 씁니까. 한자로 쓰세요”라며 면박을 줬다.

한자로 박정희라고 썼더니 빙긋이 웃으며 “내일부터 선거 준비하세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출마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너무 황당해서 “아무런 준비도 안 돼 있고 재력도 없는데 어떻게 선거에 나갑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는 “선거는 우리가 하는 겁니다. 정 회장은 출마해서 열심히 뛰기만 하면 됩니다”라며 잘라 말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10월 유신에 따른 헌법 개정으로 4공화국이 출범하면서 구성된 헌법기구였다. 71년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된 박 대통령은 헌법을 개정,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했다. 대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에게 대통령 선출권과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을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정당원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출마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었는데, 이는 야당의 영향력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출마는 이미 그쪽에서 결정한 상태였다. 영등포를 15개 지역으로 나누고, 한 지역마다 여섯 명의 대의원을 뽑았는데, 김두만 전 공군참모총장, 삼립식품 설립자인 허창성 회장, 독립운동가 이범석 장군의 며느리 최계옥 여사 등이 나와 함께 영등포 지역에서 당선됐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그해 12월과 78년 7월 두 차례 박 대통령을 선출하고 80년 8월 전두환씨까지 대통령으로 뽑은 뒤 해체됐다.

정당에 가입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통일주체국민회의 활동 자체를 정치활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선거에 출마까지 했으니 본의 아니게 정치의 주변부까지는 가본 셈이었다.

나는 평소 정치에 전혀 뜻이 없었다. 아버지도 정치라면 펄쩍 뛰셨다. 통일주체국민회의 외에 국회의원 출마 제안도 몇 차례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결정인 것 같다. 정치에 뛰어들었다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처음 국회의원 선거 출마 제안을 받은 것은 박 대통령 시해와 신군부의 등장으로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던 80년 말에서 81년 초쯤이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80년 8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총 투표자 2525명 가운데 1명의 기권을 제외한 전원의 찬성으로 1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전두환 정권은 이듬해 3월 총선을 실시키로 결정하고 착착 준비 중이었다.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으로 있던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하루는 “정 회장, 같이 가볼 데가 있어”라며 나를 불렀다. 이 전 총리와는 영등포지청에 근무할 때부터 친분을 쌓은 데다, 그와 절친한 경복고 동기동창 두 사람과 내가 친한 사이여서 자주 어울렸다. 당시 보안사가 있던 광화문 근처 찻집으로 갔더니 군인같은 인상의 중년 남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정리=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