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너는 나를 따르라!

입력 2013-01-07 18:43


요한복음 21장 20~23절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물으십니다. 예수님의 연이은 질문에 베드로가 “주님 그러하니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고 나서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부터 큰 사명을 받는 엄숙한 순간, 베드로의 반응은 의외이기도 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인 요한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 순간은 예수님께서 이 낮은 곳으로 임하시어,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하시는 ‘양 떼’를 맡기는 시간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 앞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지 생각하기보다도 다른 사람의 처지가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이 철없는 베드로, 아니 이 철없는 베드로는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생명과 구원의 본질을 가리키고 계신대도, 우리는 그보다는 겉모습에 집착하고 가십거리 같은 주변의 이야기가 더 궁금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철없이 딱한 우리에게 “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우리네 살림살이를 내다보는 전망이 밝지 않습니다. 특히나 비관적인 시각의 경제전망은 언론과 SNS를 타고 순식간에 확산됩니다. 어느 곳을 가나 돈 버는 일이 화젯거리인 지경이 되었습니다. 물론, “한 끼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얻는 일”이 참으로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느 때이고 어려움이 없던 적이 있었습니까? “사람은 자신이 사는 시대를 다른 시대보다 가혹히 여긴다”라는 시저의 말처럼, 과거보다 현재를 어려워하고 내일의 근심을 오늘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이 갖는 경향성입니다. 이 같은 심리가 우리 주변에 비관론이 확산되는 숨은 이유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위축된 심리에서 기인하는 삶의 문제를 외부현실 탓으로 돌리려는 자기 합리화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발달한 인터넷, SNS 등의 의사소통 구조가 만들어낸 ‘넘쳐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듯합니다. 그러나 말은 많아도 실천은 적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천 리 길을 가려면 먼저 한 걸음을 떼야 할 것인데, 발걸음은 떼지 않고, 길의 구조와 방향만을 떠드는 형국입니다. 오죽했으면 베드로마저도 그 중요한 순간에 ‘남 일’이 궁금했을까요? 그 베드로가 우리 자신이고, 그 궁금함이 팍팍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견디도록 도와주는 위안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가십거리와 인생의 겉모습에 집착하는 우리에게, 그래서 쓸데없는 일에 궁금해하다가 정작 갈 길은 가지 않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을 따라 살다 보면 구원의 즐거움을, 천국의 은혜를 만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180도 바뀔 것입니다.

찬송 449장은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라고 노래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실천적 믿음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인생길이 아니라 즐겁고 복된 길을 걸어가 참 생명, 참 평화, 참 정의의 열매를 거둡시다.

나홍균 총회장 (기장·대천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