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2부)] 우파의 대변신… ‘과잉 자본주의’ 통렬한 내부 비판
입력 2013-01-06 20:03
기독교민주연합(CDU)은 대표적인 우파 보수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이념에만 얽매이지 않는 정책 노선을 보여줬다. 이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한 2009년 9월 총선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11년 만에 보수연정이 승리한 선거 결과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유럽에서 우파가 승리한 것은 좌파보다 좌파의 정책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했기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CDU는 당시 독일 내부의 과잉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국가 개입을 독려하는 등 사회주의 이념을 적극 활용했다. 폭넓은 복지와 국영 건강보험 등 기존 좌파 정책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금융 규제까지 주장했다. 특히 역시 우파인 자민당과의 보수연정에서도 일부 감세를 제외하곤 전형적인 우파 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내세우지 않았다. 감세 공약 역시 조세구조 틀 자체를 바꾸자는 게 아니라 세율을 낮추는 정도였다.
유권자들은 이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독일 언론들은 우파 정당이 유권자들에게 ‘여러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는 데 좌파 정당보다 더욱 유연하고 효율적인 대응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신시켜줬다고 분석했다. 정당이 극단적인 이념 노선에 치우치지 않고 실용주의를 우선하면서 유권자들 역시 우파 또는 좌파라는 이분법 대신 정책 유연성에 점수를 줬다는 것이다.
사실 우파 정당이 여러 좌파 정책을 추진한 것은 진보적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임 정부가 추진했던 각종 개혁정책들이 든든하게 뒷받침을 해줬기에 가능했다. 슈뢰더는 2000년대 초 극심한 통일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포괄적 사회·노동 정책이 담긴 ‘하르츠법’을 통해 파견근로와 해고 보호 등 계약직에 관한 규제를 대폭 축소했다.
결과적으로 좌파는 오른쪽으로 한 걸음 옮겼고, 뒤이은 우파 정부는 왼쪽으로 한 클릭 이동하면서 시대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정책들을 추진한 셈이 됐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