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막는 입양특례법] ‘어른들의 법’ 때문에… 또, 아기 2명이 버려졌다
입력 2013-01-06 19:37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 새해에도 슬픈 사연
어른들이 무심코 만든 법 때문에 또 다시 아이 2명이 버려졌다. 이 아이들은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입양 아동이 커서 부모를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개정된 입양특례법 때문에 버려지고 부모와 영영 생이별하게 된 아이들이다.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니 부모가 아예 신원을 숨기려고 아이를 버리는 것이다. 이 법이 아니었다면 아이들은 입양기관에 맡겨져 쉽게 새 가정에 안기고, 나중에 부모의 흔적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법이 아이들의 앞날을 막고 있다.
이 법 때문에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가 벌써 20명이다.
‘딩동’. 4일 밤 11시쯤 서울 신림동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벨 소리가 또 울렸다. 정영란(44·여) 전도사는 ‘새해에는 제발 버려지는 어린 양들이 없도록 해 달라’고 매일 기도했었다. 그러나 벨 소리는 무심하게 다시 울렸다. ‘베이비박스’엔 아이가 누워 있었다. ‘베이비박스’는 영아들이 거리에 버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든 아기 보관함이다.
정 전도사는 아이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보통 아이를 버릴 때 엄마들은 젖병이나 기저귀, 이유식 등이 담긴 가방을 함께 넣어둔다. 그러나 이 아기는 가방이 없었다. 입고 있던 옷이나 몸을 감싼 이불도 구멍이 날 정도로 해져 있었다.
이불을 걷어보니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오랜 기간 아이를 씻기지 않은 듯 얼굴에는 딱지가 앉아 있었다. 젖은 면봉으로 딱지를 걷어내며 정 전도사는 눈물을 흘렸다. 더구나 아기의 출생일이 적힌 ‘쪽지’ 한 장 없었다. 자신의 생일도 모르고 살아갈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정 전도사는 “출생신고를 해야 하는 입양특례법 때문에 아기를 입양기관에 맡기지 못한 채 오랫동안 방치하다 결국 베이비박스에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새해 첫 베이비박스 아기가 잠든 지 30분이 지났을까. 5일 새벽 1시쯤 다시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벨이 잘못 울렸나’라고 생각하면서 정 전도사는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베이비박스에는 분홍색 옷을 입은 아기가 놓여 있었다.
이불을 걷자 아이의 배 위에 장문의 편지 한 통이 있었다. 아기 엄마는 편지에서 ‘48세에 네 번째 아이를 출산했지만 입양을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고 했다. 아기 엄마는 형편이 어려워 진료도 받지 못한 채 34주 만에 조산했고, 아기는 ‘소뇌회증’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이 여성은 ‘대학에 다니던 아이를 교통사고로 잃었는데, 아기를 키우는 게 두렵고 무섭다’고 썼다. 이 교회 이종락(59) 목사는 “장애아동의 경우 특히 출생신고를 꺼리기 때문에 유기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8면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