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2부)] 강한 독일 뒤엔 ‘초당적 협력’ 있었다

입력 2013-01-06 21:58

1969년 집권에 성공한 독일 사회민주당(SDP) 소속 빌리 브란트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이전 기독교민주연합(CDU) 정권의 친서방 일변도 정책을 수정하겠다”고 공개 천명했다. 진보주의자였던 그는 통일의 초석이 된 ‘동방정책’을 발표하고 옛 소련과의 수교, 동독과의 대대적인 민간 교류를 선언했다.

보수 정당 CDU는 처음에 크게 반발했지만 이 정책이 실질적 효과를 가져오자 오히려 환영했다. 냉전시대에 소련산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유일한 서방 국가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었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동방정책은 이후 서독 정권의 대(對)동독 정책 기조가 됐다. 1990년 독일 통일을 이뤘던 CDU의 헬무트 콜 총리는 “브란트 노선이 통일의 밑거름이 됐다”고 공언했다. 진보 정당의 정책에 공을 돌린 것이다.

1949년 서독 정부 수립 이후 64년 동안의 독일 정치사에서 보수·진보 간 신뢰와 타협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삭감, 복지재정 축소와 근로자 해고 요건 완화 등은 좌우 정치세력이 기업과 근로자 계층을 서로 설득하며 이뤄낸 대표적인 대타협 결과물이다.

1999년 ‘제3의 길’을 선언한 SDP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지난해 4월 베를린 경영대학원 강의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개혁은 큰 정치적 부담이 따른다”고 말했다. 정치적 부담이 큰 만큼 집권세력은 야당의 협조를 얻어야 하며, 야당은 당파적 이익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 이전 정권에서도 우리 사회는 극한적인 여야 대립으로 점철됐다. 정부와 여당은 야권을 설득하는 데 의미 있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야당도 대안 없는 반대에만 ‘올인’했다. 그 사이 정치는 실종됐다.

새 정부가 출범하는 2013년, 한국 정치의 최우선 과제는 독일처럼 좌우 대립을 넘어서는 초당적 협력체제(Bipartisanship)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중앙선관위 연수원 신두철 박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독일 정치가 우리와 가장 대비되는 것은 좌우파가 대립과 동시에 타협할 줄 안다는 점”이라며 “CDU와 SDP는 서로가 이념적 극단 노선을 고집하지 않을 것을 믿고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이라면 상대방의 것이라도 과감히 수용한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두 거대 보수 진보 정당은 필요할 경우 연합정부 구성도 마다하지 않았다. 1960년대 독일 사회의 좌우 이념 대립이 심각해졌을 때 CDU 정권은 SDP에 대연정을 제안했고, SDP는 받아들였다. 2005년 총선에 승리한 CDU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역시 슈뢰더 전임 총리의 복지와 성장 동시 추구 정책을 이어받기 위해 좌우 동거내각을 구성했다.

신창호 기자, 베를린=한장희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