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째 밤샘 근무 그래도 계속 일하고 싶다… 국민일보 기자 ‘70대 아파트 경비원의 하루’ 동행기
입력 2013-01-06 19:09
서울 개봉동 A아파트 경비원 정주원(가명·70)씨는 지난 5일 오전 6시 출근하자마자 넉가래를 들고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털모자와 귀마개를 챙겼지만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눈을 쓸어낸 지 1시간30분 정도가 지나자 영하 13도의 혹한에도 정씨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는 주민들이 빙판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모래와 염화칼슘을 뿌리는 작업도 했다. 정씨는 “새벽에 눈이 오는 날에는 잠들기 전부터 걱정이 앞선다”며 “주민들이 출근하기 전에 제설작업을 마치려면 손발이 얼어붙는 것도 잊는다”고 말했다.
분리수거를 하는 날도 무척 바빠진다. 하루 종일 분리수거장에 있으면서 주민들이 재활용품을 분리하는 걸 돕는다. 주민들이 떨어뜨린 재활용품을 제자리에 갖다놓거나, 아무렇게나 쌓인 종이상자들을 정리하는 것도 정씨의 몫이다.
밤 11시, 정씨는 손전등과 호루라기를 챙겨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혹시 의심스러운 외부인이나 불량 청소년이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다. 정씨는 “오늘도 경찰이 와서 ‘최근 아파트 절도가 늘어났으니 순찰을 강화해 달라’고 당부하고 갔다”고 말했다. 주차를 마친 주민이 “수고한다”며 검은 봉지에서 귤 6개를 꺼내 건넸다. 정씨는 “주민 격려 한마디면 하루 종일 쌓인 피곤도 사라진다”며 밝게 웃었다. 그는 이어 오전 1시와 3시, 두 차례 더 순찰을 돌았다. 정씨는 7년째 경비업무를 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정문과 후문에 한 명씩 2명이 경비를 선다. 오전 6시에 시작해 24시간 근무 후 교대한다. 정문 경비를 서는 김태훈(가명·73)씨는 13년 경력의 베테랑 아파트 경비원이다. 그는 택배 물품 관리가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하루에 택배 회사 9∼10곳에서 물건을 배달해 오는데 대부분 경비실에 내려놓고 간다는 것이다. 경비실 한쪽에는 택배 물건 30여개가 쌓여 있었다. 주민들이 찾아가지 않는 택배는 직접 집으로 갖다준다. 오래 보관하면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택배를 대신 수령할 때 잘못 온 건지 일일이 따져봐야 하고 분실 우려 때문에 순찰을 나설 때도 신경 쓰인다”며 “늦은 시간에 가정에 찾아가면 ‘고작 택배 때문에 잠을 깨우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고 했다.
새벽 시간 졸음이 몰려오지만 방문 차량들 때문에 잠시도 눈을 붙일 틈이 없다. 아파트 주차장에 외부인이 마음대로 차를 세워두는 걸 막기 위해 방문 차량의 번호와 방문 호수 등을 기록한다. 하루에 평균 50여대의 방문 차량이 드나든다.
이렇게 일하면 한달에 120만원 정도를 손에 쥔다. 정씨는 최근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 아파트 경비원들의 굴뚝농성에 대해 “요즘 입주민들이 젊은 경비원을 선호한다는데 경비일까지 못하면 늙은이들이 무슨 일을 하며 먹고살겠느냐”며 “농성을 벌인 경비원도 월급은 적지만 수년간 꾀 안 부리고 성실하게 주민을 위해 일했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국민일보 기자가 그들과 1박 2일을 지내며 경비원들의 삶을 들여다 봤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