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지하 무죄 판결을 대통합의 계기로 삼아야
입력 2013-01-06 18:30
군사독재 시절 대표적 저항시인이었던 김지하씨가 청구한 두 건의 재심 사건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이원범)는 4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가담한 혐의(긴급조치 4호 위반 등)로 7년가량 수감됐던 김씨에 대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또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의 부정부패를 고발한 담시 ‘오적(五賊)’ 필화 사건 혐의(반공법 위반)에 대해서는 법정 최저형인 징역 1개월에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김씨의 민주화운동을 평가하고 당시 판결에 대해서는 사죄의 뜻을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유신헌법 등을 비판하며 당시 정권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수년간 옥고를 치르는 등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크나큰 고난을 겪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당시 재판 절차가 사법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다하지 못해 피고인을 포함한 다수의 지식인들에게 희생을 강요했고, 이에 재판부로서 진실로 사죄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오적 필화 사건에 대해서는 “‘오적’은 당시 일부 부패한 권력층의 비리 등을 문학작품 형식으로 비판·풍자한 것으로 이는 예술과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사실상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민청학련 사건은 39년 만에, 오적 필화 사건은 43년 만에 재판부가 김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유신정권 때 자행된 수사기관의 잘못된 수사와 기소 사건에 대해 재판부가 인권의 보루 역할을 하지 않고 정권의 시녀로 전락했던 점을 반성한 것은 뒤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법조계에서는 김씨에 대한 무죄 선고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나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사법부가 긴급조치 1호와 4호를 위헌으로 결정했고, 긴급조치 9호 위반 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사건도 받아들임으로써 앞으로 긴급조치와 관련한 피해자들의 재심 청구가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수백명이 재심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 재심 선고를 계기로 그동안 반목과 갈등 관계를 유지했던 일부 산업화·민주화 세력 사이에 역사적 화해의 물꼬가 트이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김씨가 박 전 대통령 정권 아래에서 모진 고통을 받았으나 18대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과거의 앙금을 털어내고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만큼 이제는 박근혜 정부에서 유신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는 대통합의 조치를 내놓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나라 발전의 큰 물줄기를 형성했던 산업화·민주화 세력이 둘로 쪼개져 대립하는 모습을 재현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아픔을 딛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