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은 우리들에게 모든걸 주고 가셨다”… 故 임연심 선교사 사역지 케냐 ‘로드와 컴파운드’
입력 2013-01-06 17:55
케냐의 투르카나는 계속되는 기근과 식량 부족, 교육시설 부재, 물 부족, 악조건의 기후 등으로 버려진 땅이었다. 연평균 40도가 넘고 연중 강수량은 300㎜도 안 된다. 물과 식량문제로 에티오피아와 유혈사태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척박한 이곳에 살고 있는 투르카나족은 염소와 낙타를 키우는 유목민족이다. 그러나 가축이 없는 이들은 정부나 구호단체들이 주는 옥수수 가루와 약간의 식용유로 살아가지만 하루 한 끼 먹기조차 힘들다.
케냐 정부도 외면한 이곳에서 지난 28년 동안 버려진 고아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한 여인이 있다. ‘투르카나 맘(Mom)’으로 불리는 고 임연심 선교사. 지난해 8월 풍토병으로 소천하기 전까지 독신으로 살면서 25개의 제자교회를 개척하고 48개 교회를 지원한 그의 사역지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지난 연말 이곳을 찾았다.
투르카나의 행정도시인 로드와에 임 선교사가 조성한 ‘로드와 컴파운드’에 들어서자 붉은 벽돌로 지어진 ‘킹스 키즈(King’s Kids)’ 고아원과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유치원 건물이 반겼다. 유치원 식당 뒷마당엔 진흙으로 만든 4개의 화덕이 있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만들어주기 위해 임 선교사가 직접 만든 것이다. 그는 평소 자동차로 꼬박 이틀을 운전해 나이로비와 로드와를 오갔다. 항공료도 아껴야 했지만 그보다는 그 돈으로 아이들에게 줄 옷가지와 학용품과 식품을 더 많이 싣기 위해서였다.
현재 이곳에서 사역하는 후임 강성영(34) 선교사는 임 선교사가 소천한 후 유치원과 고아원 운영이 중단된 상태지만 다시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교사님은 죽음을 예감하셨는지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위탁하시며 저희 부부에게 이곳에 와서 사역할 때 다시 시작하라고 당부하셨어요.” 강 선교사 부부는 2007년과 2008년 이곳에서 단기 선교를 하면서 투르카나를 마음에 품었고, 임 선교사의 소천 소식을 듣고 ‘이제 우리가 가서 사역을 이어야 할 때’란 생각으로 이곳에 왔다.
컴파운드 내에 있는 임 선교사의 사택은 작고 소박했다. 작은 침실 하나와 부엌과 3년 전 수세식으로 바꾼 화장실. 짐이라곤 나무책상 하나와 옷장이 전부였다. 4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 때문에 임 선교사는 방에서 못 자고 부엌 한쪽에 놓인 간이침대에서 잤다고 했다.
임종 당시 곁을 지켰던 안태경(여의도순복음교회 선교개척국장) 선교사는 “임 선교사는 소천하기 전 1주일 동안 고열에 시달렸지만 나이로비로 나오는 것을 한사코 만류하시며 ‘이제 내 사역은 다 마쳤다. 지금 주님께 가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고백했다”고 전했다. 생전에 투르카나에 묻히고 싶다고 말해 온 임 선교사의 화장한 유골은 사택 옆에 마련한 묘역과 경기도 파주 오산리 최자실기념 금식기도원에 나뉘어 안치됐다.
임 선교사는 영양실조와 말라리아에 자주 시달렸지만 투르카나 아이들만은 글로벌 리더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품었다. 아이들의 달란트를 개발해 각 분야에서 쓰임 받은 글로벌 리더로 키우고 싶었다. 매일 새벽 전등 대신 자동차 헤드라이터를 켜고 마당에서 고아원 아이들에게 성경 말씀을 읽어주고 가르쳤다. 나중엔 스와힐리어와 투르카나어 성경 통독기를 개발해 현지인들에게 성경을 들려주며 복음을 전했다.
고아원에서 자란 70여명의 아이들은 의사, 교사, 은행원, 회계사, 교육청 직원 등으로 성장했다. 나이로비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현재 케냐 국립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존슨 아키로는 “20년 전 고아였던 우리가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 힘들어 할 때 맘이 따뜻한 천사가 되어 주셨다”고 말했다. 은행원이 된 이야슨은 “맘은 자신을 돌보지 않고 모든 것을 우리들에게 주었다. 많은 아이들을 교육시켜 주었고 그리스도를 알게 해주어 천국의 소망을 심어주셨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가 된 크리스틴은 “맘은 부모를 잃은 우리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셨고, 우리가 천국에 밟고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돼주셨다”고 말했다. 임 선교사가 키워낸 이들은 자신들이 ‘킹스 키즈’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했다. 현재 킹스키즈 동창회가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문맹률이 95%인 투르카나에서 이런 아이들이 나온 것은 기적이라고 했다.
현재 나페이카르교회 옆에 임 선교사의 꿈이던 ‘나페이카르 중·고등학교’ 건축이 한창이다.
임 선교사는 1984년 여의도순복음교회 파송을 받고 투르카나로 떠났다. 아무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는 그곳에서 그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붙들고 살았다. 생전의 그의 고백이 마음에 남는다. “내 것을 포기하면 한 사람이 살 수 있어요. 나는 투르카나 사람들을 돌보며 그곳에서 진정 하나님을 만났어요. 전 그분의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글·사진=투르카나(케냐)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