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2부)] 정치 엘리트 교육이 좌우 대타협 밑바탕

입력 2013-01-06 18:41

독일 정치는 ‘정당 재단’들이 좌지우지한다.

보수색채의 기독교민주연합(CDU)과 진보진영의 사회민주당(SDP), 중도우파 자유민주당(FDP),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당(Die Linke) 등 모든 정당의 지도급 인사들은 내부 재단에서부터 자라나 정치 엘리트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정당이 후원하는 재단은 CDU의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과 SDP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으로, 현대 독일 정치사에 굵은 족적을 남긴 정치인들을 수없이 배출했다.

아데나워 재단은 매년 독일 전역에 2000여명의 대학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제공한다. 메르켈 총리가 대표적인 ‘아데나워 장학생’이다. 그는 동·서독 분단 시절인 1954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아버지(목사)의 선교사업에 따라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자랐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CDU 당원으로 가입했고, 아데나워 재단으로부터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았다. 공산주의 치하 동독에서도 메르켈은 온건우파 정치신념을 교육받고 전파하는 메신저 역할을 한 셈이다. 이후 메르켈은 1990년 통일 이후 CDU의 차세대 엘리트로 중앙 정치무대에 진출했다.

1953년 설립된 SDP의 에베르트 재단 역시 일정 기준에 따라 선발된 대학생들에게 장학금과 생활보조비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배출된 1만2000여명의 장학생 중에는 90년대 ‘제3의 길’ 선언으로 중도좌파 노선을 열었던 슈뢰더 총리도 있다. 청년시절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를 꿈꿀 정도로 급진적이었던 그는 대학 입학 후 에베르트 재단 장학생에 선발됐고, 이후 정치색깔은 ‘선홍색’에서 점점 붉은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40대에 연방 하원의원이 된 이후 슈뢰더는 합리적 온건좌파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사석에서 늘 “에베르트 재단이 아니었다면 난 그저 불평불만에 가득한 좌익분자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정당 후원 재단이 이처럼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강압적·교조적 교육 금지와 균형적 논점의 확보, 현실정치 상황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객관화하는 ‘정치교육 3대 원칙’을 정립한 ‘보이텔스바흐 협약(Beutelsbacher Konsens)’에 따른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전후 좌우 극단주의 세력 방지에 노력했던 독일 정치권은 새로운 세대에 대한 정치교육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네오나치와 좌익 테러세력이 잇따라 등장하자 1976년 CDU와 SDP 등은 이 협약을 맺었다. 어떤 정당 재단이라 해도 이 원칙에 따라 정치엘리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천명한 것이다.

모든 정당 재단들은 재원의 90% 이상을 국가로부터 보조받는다. 정당은 상·하원 의석비율에 따라 주어지는 국가보조금을 전액 진성당원 양성교육과 정책 연구에 쓴다. 그리고 해마다 교육교재에서부터 연구결과까지 재단의 모든 사항을 연방 정치교육원에 신고 또는 제출해야 한다. 국가가 정치의 주춧돌인 정당에 대해 타협과 민주주의 정신을 가르치도록 적극 유도하는 것이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