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도영] 검찰총장과 인사수첩
입력 2013-01-06 18:31
2011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이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내정한 직후의 일이다. 인선 과정에 참여했던 청와대 고위 간부에게 물었다. “한상대 총장 지명은 논란이 불가피한데, 무리해서 임명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한 내정자는 고려대·TK 출신의 대표적인 MB 검찰 인맥으로, 야당과 언론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그 간부는 “어떤 인선 기준도 VIP의 호감을 넘어서기 어렵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당시에도 인사 검증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있었다. 청와대는 한 총장 내정자로부터 100개 문항이 넘는 자기검증서를 받았고,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철저히’ 검증했다. 내정 직전에는 청와대 고위 인사들이 참석하는 모의 청문회도 실시했다. 그러나 어떤 사전 검증 절차도 ‘각하’의 호감을 넘어서지 못했다. 지난해 말 한 총장은 ‘검란(檢亂)’ 파동을 겪으며 퇴임했고, 현재 검찰은 김진태 대검차장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제 한두 달 뒤면 박근혜 당선인이 자신의 임기 첫 검찰총장을 지명해야 한다.
박 당선인는 검찰총장 지명 과정에서 ‘인사 수첩’을 덮고 측근들의 ‘조언’에도 귀를 닫았으면 한다. 박 당선인 주위에는 쟁쟁한 법조인 출신 참모들이 많고, 박 당선인이 정치를 하며 눈여겨 본 훌륭한 검찰총장 후보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호감 대신 공약과 법 절차에 따라 검찰총장을 지명했으면 좋겠다.
박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검찰총장은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인물로, 국회 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하겠다”고 약속했다. 추천은 위원회에 맡기고 검증은 청문회, 즉 국회와 언론에 맡기겠다는 의미다.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는 2011년 6월 30일 국회를 통과한 검찰청법 개정안과 지난해 10월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추천위 운영규정안에 근거한다. 박 당선인의 검찰총장 인사에 처음으로 적용되는 제도다.
지명 과정은 다음과 같은 수순으로 진행된다. 법무부 장관은 9명으로 이뤄진 추천위원회를 구성한다. 9명에는 전직 고위 검찰 간부 1명, 대한변호사협회장, 한국법학교수회장 등 법조계 인사 6명과 변호사 자격이 없는 전문가 3명(여성 1명 반드시 포함)이 포함된다.
추천위는 법무부 장관에게 3인 이상의 후보군을 추천하고, 장관은 청와대와의 조율을 거쳐 이들 중 1명을 검찰총장 후보로 제청하면 박 당선인은 그를 총장 후보로 지명한다.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검찰총장 후보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데 인사청문회에서 합의가 되지 않으면 박 당선인은 다른 후보를 찾아야 한다. 한상대 총장의 경우 국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했다. 박근혜 시대라면 한 총장은 총장이 되지 못했을 수 있다.
추천위가 자격이 없는 인물을 추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검찰총장 후보군은 그동안 대검차장, 5개 지역 고검장, 법무연수원장, 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 차관 등 9개 자리에서 발탁되는 게 관행이었다. 사람이 부족하면 전직 검찰 간부 등 후보군 대상을 확대하면 될 듯하다. 추천위와 국회, 언론의 총장 인선 기준은 상식적이다. 부적절한 수사를 한 적은 없는지, 조직 내부의 평판은 좋은지, 부동산 투기를 한 적은 없는지, 세금은 제때 냈는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은 없는지 등이다. 많은 인사청문회에서 단골로 등장했던 기준들이다. 추천위와 국회가 이러한 기준들에 가장 근접한 인물을 골라낼 정도의 상식은 있다고 믿고 싶다.
남도영 사회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