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정기] 따뜻한 공동체의 새해 풍경

입력 2013-01-06 18:31


2013년 1월 1일 아침 7시 26분 27초. 우리 땅 독도에 떠오른 붉은 태양을 따라 계사년 새해가 밝아왔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누구나 맞는 송구영신의 절정. 경상도에도 전라도에도, 도시에도 시골에도, 농촌에도 어촌에도 새해는 찾아왔다. 공전하고 자전하는 지구를 따라 우주의 시공간, 자연의 시공간은 이렇듯 도도하고 공평하다.

인간의 시공간은 우주의 시공간에 비하면 하루살이 찰나나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천차만별,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새해 첫날 어떤 가족은 새해 인사를 나누고 떡국을 먹고 떠들썩하게 웃으며 즐거웠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선가 노숙하고 있을 가장을 걱정하며 가슴이 까맣게 타버린 가족도 있을 것이다. 새해 벽두의 강추위 속에서 꺼져버린 전기담요와 함께 발견된 중년 사내의 죽음을 알리는 짧은 뉴스. 알고 보면 그도 한때 푸른 꿈과 빛나는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끼리끼리 통합은 의미 없어

2012년의 마지막 날 12월 31일 아침.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30m 굴뚝으로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던 62세의 경비원 아저씨. 서울 압구정동 고급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가 작년 3월 60세를 넘긴 촉탁직을 계약 해지키로 한 결정에서 비롯된 일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드러난 대립 또한 섬뜩할 정도다. 청년과 장년을 가로지르는 세대간의 차이는 불신을 넘어 반목의 단계에 이르렀다. 그뿐인가. 광주와 부마항쟁이라는 민주주의의 성지를 포함하고 있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변함없는 특정 후보 선호는 대한민국 공동체를 부정하는 망국의 수준이다. 80∼90% 선을 넘나드는 특정 정당 후보 지지는 대한민국을 지역주의의 인질로 삼는 협박행위다.

이런 형태의 찬성과 반대는 우리 사회를 놀라게 하는 묻지마식 범죄행위와 다를 바 없다. 특정 정당의 사람이면 무조건 지지하는 투표 결과는 어떤 항변을 앞세우더라도 민주화운동에 생명과 안위를 바친 선배들의 진정과 희생을 저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미래를 향해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국민 대통합. 100% 대한민국. 전부 또는 전무(all or nothing) 식의 대립으로 진통하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통합이 강조되는 것은 당연하다. 통합이 이 시대의 선이고 메시아라는 점에 동의한다. 탕평책, 개혁정책, 제도개선, 복지증진, 재벌개혁, 공정거래, 북한문제 개선 등 거론되고 있는 다양한 방안도 필요하다. 무슨 토목공사처럼 일거에 해결하려는 전시주의가 아닌 합리적인 우선순위에 따라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다. 새 정부든, 새 대통령이든 온 국민과 함께해야지 자기들끼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도 기본이다.

더불어 보살피는 삶이 소중

더 중요한 것은 경비원 아저씨가 굴뚝으로 올라가지 않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가는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는 일이다. 잘사는 압구정동의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원이 일할 수 있는 정년을 60세로 내리지 않는 배려다. 작은 이익을 위해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마지막 밥벌이 직업을 내치지 않고 이웃과 더불어 살려는 보살핌이 소중하다. 우주의 시공간과 다르게 인간의 시공간은 휴머니즘의 따뜻한 공동체 문화여야 진화한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반칠환의 시 ‘새해 첫 기적’이다. 황새, 말, 거북이, 달팽이, 굼벵이 그리고 움직일 수 없는 바위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왔지만 새해 첫날이라는 미래를 향한 출발점에 합류했다. 통합하는 공동체의 정겨운 새해 풍경이다.

김정기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