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정욱] 총기규제가 권리침해라니

입력 2013-01-06 20:19


지난달 15일 미국 코네티컷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동사건은 26명의 희생자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이었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예배에 참석하여 총기규제를 약속했고, 사건 직후의 여론조사에서는 총기규제 필요성에 공감하는 미국인이 이례적으로 과반을 넘어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총기규제가 쉬운 일은 아니다. 공화당을 후원하는 미국총기협회의 지속적인 로비가 총기구입 절차를 어렵게 하여 총기소유를 제한하려는 입법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미국인들이 총기소유를 수정헌법 2조에 의해 보장된 불가침의 개인 권리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 총기규제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흔히 미국은 자유주의를 모태로 세워진 국가라고 한다. 자유주의는 18세기에 관료제와 용병 상비군에 의존하는 절대왕정에 대한 저항사상으로 등장하였다. 이는 천부인권론과 사회계약론을 활용하여 무력을 독점한 왕과 국가로부터 개인의 자유, 즉 인신의 자유, 재산권 행사의 자유, 정치적 의사 표현과 신앙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사상이었다.

건국기의 미국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사상인 공화주의 역시 상비군에 의존하여 시민적 자유를 억압하는 절대왕정을 불신하였고, 자유민들의 자발적 무장에 의존하는 고대 폴리스의 시민군을 이상화하고 있었다. 따라서 영국 국왕 조지3세를 전제군주로 규정하고 자유주의 이론의 저항권을 실현하여 독립을 쟁취한 미국은 20세기 초까지도 대규모 상비군을 만들지 않았고 현재도 민간인이 국방장관으로서 군을 지휘하는 문민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총기소지 자유를 허용한 수정헌법 2조는 원래의 헌법이 국가가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기본권을 명문화하지 않은 것을 보완하기 위해 1791년 제정된 열 개의 추가 조항 중 하나이다. 상비군 대신 국가를 수호할 민병대의 무장을 지원하고 연방정부의 전제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정부에 대한 시민의 최후 저항수단을 허용하였던 것이다. 유럽의 왕정국가들에서 정부가 점차 폭력의 수단을 독점해가고 있을 때 미국은 총기소유를 자유화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저항권을 폭넓게 인정하였던 것이다.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건국 이후 미국은 국가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이민국가로서 문화적 동질성을 통해 소속감을 강화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자유와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 신조들이 소속감의 근거가 되어 왔다. 따라서 미국에서 개인의 자유란 특수한 국가 구성 원리로 여겨진다.

미국의 대법원이 경제 영역에서 정부 개입에 자주 제동을 거는 것이 이러한 이유에서이고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없는 개인의 권리임을 규정한 수정헌법 1조가 중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기에 며칠 전 CNN 방송에서 미국총기협회 관계자를 강하게 비판한 영국인 진행자에 대해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여 수정헌법 1조를 위반했다는 점을 들어 백악관에 추방 청원이 접수되기도 한 것이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국가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에 미국인들은 이것들에 관한 불멸의 전통을 만드는 데 집착하곤 한다. 가령 민주주의에 관한 여러 제도들이 그러하다. 승자독식의 대통령 선거인단 제도나 주별로 열리는 코커스와 프라이머리 제도가 사례이다. 그러나 이제는 선거인단 제도가 야기하는 민의의 왜곡 그리고 전통적 대통령 후보 선출 제도가 야기하는 재원의 낭비와 금권정치의 위험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자유에 관한 가장 미국적인 전통이라는 총기소유에 대해서도 사실상 무제한적인 총기소유의 자유가 불러오는 사회적 위험을 논의할 때가 된 것이다. 전통은 한 사회 내의 제도적 안정성을 가져오지만 화석화된 전통은 이득보다는 해악을 가져오는 인습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정욱 고려대 역사硏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