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승훈] 혹한기 훈련
입력 2013-01-07 21:21
해병대 1사단 수색대에서 복무 중인 클릭비 출신의 원조 아이돌 오종혁 병장이 화제다. 해병대 설한지 훈련(육군의 혹한기 훈련)을 받겠다며 전역을 연기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그가 새해 첫날 겨울 바다를 1㎞나 헤엄쳐 나온 뒤 전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관심 끌어보겠다는 건가’라는 식의 삐딱한 생각은 씻은 듯 사라졌다.
개인적으로 혹한기 훈련은 악몽이었다. 줄 서서 배식 받는 동안의 추위 때문에 식사시간이 귀찮을 정도였다. 배고프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오직 벗어나고 싶다는 본능 외엔 아무것도 작동되지 않았다.
정부서울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군인이 아니지만 매일 추위와 싸우고 있다. 정부가 매년 그래왔듯 올해도 전력사용 급증에 대비해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서울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물론 전국의 1만8000개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이들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사무실 위치나 자리 배치 등에 따라 사정은 다르겠지만 정부서울청사의 사무실을 들락날락하다 보면 에너지 절약 캠페인이 아니라 혹한기 훈련 현장을 보는 듯하다. 사무실 기준 난방 온도는 평균 섭씨 18도 이하라는데 실제 사무실 기온은 상당수가 15도를 밑돈다. 체감으로 느끼는 온도는 10도 밑이어서 마치 외부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공무원들은 떨면서 자리에 웅크리고 있다. 출근할 때 입고 나온 코트와 패딩점퍼 차림 그대로인 사람들이 많다. 손을 호호 불어가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전화를 받는다. 추위를 견디다 못해 운영비를 떼어내 보온성 좋은 점퍼를 단체로 구입하기도 한다.
전력 수요가 연일 최대치를 경신하고 수급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국민의 동참을 유도하기 위한 공무원들의 솔선수범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본연의 업무를 위축시키는 수준이 돼서는 곤란하다. 경험으로 볼 때 추위에 떨면서 하는 근무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도식화된 솔선수범으로는 잃는 게 더 많을 것 같다는 우려가 드는 까닭이다.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뒤 더 효과적으로 국민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전력 절감 방안이나 효율적인 전력 생산 정책을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공무원들에겐 군인과 달리 한겨울 엄혹한 환경에서 버텨내는 것보다는 효과적인 정책을 생산해내는 게 더 중요한 임무 아닌가.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