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황제펭귄의 월동용품

입력 2013-01-04 19:19

요즘처럼 추울 때 솔로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월동용품’은 몸과 마음을 모두 따뜻하게 해주는 연인일 것이다. 사람을 제외한 영장류 중 가장 북쪽에 서식하는 일본원숭이에게도 뛰어난 성능을 가진 월동용품이 있다. 바로 야외온천이다.

털이 긴 편도 아니고 두꺼운 피하지방도 없는 일본원숭이들은 온천에 몸을 담근 채 혹한을 이겨낸다. 그런데 이 뛰어난 월동용품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다. 모두가 온천욕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원숭이들만 들어간다는 점이다.

나머지 원숭이들은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서 몸을 덜덜 떨며 동료들이 따뜻하게 온천욕을 즐기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온천 속에 암컷과 새끼원숭이도 있는 걸로 보아 힘이 센 개체만 들어갈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왜 바깥쪽의 원숭이들은 온천 안의 빈자리를 그저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해야 할까.

그것은 위계질서가 뚜렷한 계급사회이기 때문이다. 온천에는 계급이 높은 원숭이들만 들어갈 수 있다. 아무리 빈자리가 많아도 계급이 낮은 ‘서민’ 원숭이들은 온천 안에 손가락 하나 들여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추운 곳에 사는 남극의 황제펭귄들은 더욱 색다르다. 그들의 월동용품이란 서로의 몸을 바짝 밀착시키는 행동이다. 그러면 가장 안쪽에 있는 개체들은 바깥쪽보다 무려 10도나 따뜻하게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문제는 가장 바깥쪽에서 섭씨 영하 50도의 눈바람을 견뎌내야 하는 펭귄들이다. 그러나 가장자리의 펭귄에게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가장 아늑한 자리로 옮길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이처럼 서로 몸을 바짝 붙인 채 자리를 서로서로 교대하는 것을 허들링(huddling)이라 하는데, 황제펭귄 무리는 허들링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서로의 체온을 유지한다. 일본원숭이들의 온천보다는 온도가 높지 않으며, 바깥쪽에 있던 펭귄이 무리 가운데를 향해 끼어드는 모습이 인간들의 눈엔 그저 추위를 피하기 위한 서로 간의 다툼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 머시드 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이 수학 모델을 이용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이 같은 허들링이 황제펭귄 집단 전체를 가장 따뜻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식임이 입증되었다. 45년 만에 가장 추운 겨울을 맞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황제펭귄처럼 추위를 피하는 이웃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