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교회가 있었네-대은교회]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믿음은 하나… 동네사람들 다 구원받아야 할텐데

입력 2013-01-04 18:27


경북 예천군 개포면 황산리에 있는 촌락 10여곳은 대부분 완만한 지대에 자리 잡은 농촌이다. 대은교회는 파평 윤씨 집성촌인 용궁면 대은 마을 인근에 위치한다. 교인 수는 얼마 안 되지만 깊은 신앙을 갖고 있는 성도들은 “한 명의 이웃이라도 더 하늘로 떠나기 전에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로 올 한 해를 시작했다.

어르신 성도들의 신년 기도

한파가 몰아친 지난 2일 예배당에는 장작을 때는 난로 주변에 어르신 6명이 모여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교회 곳곳은 금이 갈 정도로 낡았고 화장실이 없어 성도들은 비좁은 목사 사택의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 교회 공간이 좁다보니 예배당 한쪽 구석에는 식당 겸 주방으로 사용하는 부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지간한 시골 교회는 있는 승합차도 없다. 몸이 불편하거나 연세가 많은 어르신 성도들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운송수단이지만 워낙 교회 재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시설은 열악했지만 분위기는 훈훈했다. 어르신들은 장작불에 구운 고구마를 먹으면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화제는 새해 목표였다. 어르신 성도들은 하나 같이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가족들을 위한 기도는 하지 않느냐는 질문엔 “우리 가족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신년에 따로 기도를 안 해도 하나님께서 돌봐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다.

오태륜(66) 장로는 “무엇보다 교회에 일할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신년 기도 제목은 우리 교회의 부흥”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의지하고 허물없이 대화할 수 있는 교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순주(61) 장로도 “새해 첫날 15가정 이상이 우리 교회를 섬겨 자립할 수 있는 교회로 성장하기를 기도했다”고 했다. 곁에 있던 한경운(53) 장로는 “지난해에도 15가정이 목표였는데 올해는 30가정 정도는 나와야 되지 않겠느냐”면서 웃음을 지었다.

올해 교회의 표어는 여호수아 24장 15절 말씀이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김갑진(51) 목사는 “세상적으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교회도 양극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시골의 한 영혼이라도 그 소중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대은교회는 주님이 강하게 역사하실 수 있는 작지만 큰 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교회 부흥은 먼 미래의 일처럼 아득해 보였다. 주민 수 급감, 오랫동안 뿌리내린 유교문화, 열악한 교회 재정, 전무한 외부 지원…. 척박한 환경에서 성도 12명이 교회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만도 벅차 보였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지난해 성탄 예배 때 70, 80대 어르신들이 많이 참여해 주셔서 35명이 예배를 드렸다”면서 “조금 더 노력하고 기도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복음화를 위해 대은교회가 처음 시작한 일은 무료로 영정사진을 찍어드리는 것. 변변한 영정사진도 준비하지 못한 채 쓸쓸하게 생을 마감할지 모를 어르신들에게 ‘작지만 큰 선물’을 전하려고 시작한 일이다. 여기에는 믿음이 없는 어르신이나 그 가족이 영정사진을 받아보면서 자연스레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한다는 선한 의도가 깔려 있다.

영정사진 사역은 지난해 3월 귀촌한 신하영(72) 권사의 헌신으로 착착 진행됐다. 서울의 한 감리교회에서 장례위원장을 맡았던 신 권사가 직접 사진을 찍고 액자에 넣어드리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신 권사는 “이 동네 어른들은 죄다 오늘 내일 하는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라서 이 일을 추진했다”며 “오랫동안 사진을 취미로 찍었는데 좋은 일에 활용할 수 있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신 권사의 아내 주진자(69) 집사는 “평소에 근검절약이 몸에 밴 남편인데 시골에서 영정사진 인쇄한다고 컬러프린터를 새로 샀다”면서 “비용이 좀 들어갔지만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보람된 일까지 할 수 있게 돼 즐겁다”고 했다.

가족들도 챙겨주지 못한 영정사진을 교회에서 받게 된 주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김 목사는 “어르신들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면서 “70명 정도 제작해드리려고 했는데 어디서 소문을 들으셨는지 멀리 떨어진 마을 이장님까지 오셔서 20여명의 영정사진을 더 부탁했다”고 말했다.

굴곡 깊은 교회사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에 소속된 대은교회는 58년 전에 창립됐다. 환갑을 바라보는 교회의 역사는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굴곡이 깊다. 3대째 대은교회를 섬기는 윤정렬(50) 집사는 “교회를 새로 지을 때 벽돌을 직접 나르셨던 선친(고 윤원식 안수집사)께서는 노심초사 교회가 부흥되기만을 바라셨지만 늘 교회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다”며 “선친의 뜻을 받들어 교회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열심히 기도한다”고 말했다.

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문서는 남아있지 않았다. 윤 집사를 비롯한 주민들의 기억을 종합해보면 교회는 1955년 10월 23일 경북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에 처음 세워졌다. 허름한 예배당이었지만 한 가족처럼 정을 나누던 40여명이 뜨겁게 예배를 드리던 곳.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이 예배당은 60년대 초반 태풍에 무너져 내렸다. 건축업자가 아닌 주민들이 손수 흙으로 쌓아올린 건물이었기 때문에 억센 비바람을 버텨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교회는 용궁면 향석리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도들 간의 의견 대립이 불거져 교인들이 세 갈래로 나뉘게 됐다. 기침 교단의 전신인 동아기독교회를 고수하던 기존의 성도 20여명, “새로운 찬송가도 도입하자”고 주장한 10여명, 나머지 30여명은 신흥 종교에 빠진 사람들.

동아기독교회 측 성도들은 교단에서 편찬된 복음찬미 이외의 찬송가를 부르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었다. 한 주민은 “당시 새로 들어온 찬송가는 지금의 랩 음악 같이 낯설어 보였을 것”이라며 “그래도 신앙의 뿌리가 같은 만큼 양쪽이 조금만 양보했더라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는데 그때는 이런저런 갈등이 심각했던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향석리의 교회를 나온 성도들은 한동안 가정예배를 드리다가 78년 11월 황산리에 교회를 세웠다. 이 교회가 바로 현재의 대은교회다. 교인들은 강가에서 퍼온 모래로 블록을 찍어내 예배당을 쌓아올렸다. 동아기독교회 쪽 성도들만 향석리에 있는 교회에 남았고 신흥 종교에 빠진 사람들은 다른 ‘교회’로 떠났다.

황산리에 교회가 새로 지어진 이후에도 시련은 끊이지 않았다. 젊은 성도들이 도시로 빠져나간 뒤 교회가 있는 동네 주민 수가 200여 가구에서 70여 가구로 급감했다. 남은 주민 대부분은 고령으로 50, 60대가 젊은 축이었다. 그러다보니 40여명이던 성도 수가 80년대 중반 10여명으로 감소했다. 고령으로 세상을 뜨는 성도들이 나오면서 이마저도 유지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유교적 성향이 짙은 마을 분위기 때문에 어르신들에게 교회에 나오라고 권하는 게 쉽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0년간 시무했던 목회자가 지난해 초 사임 의사를 밝혔다. “교회 사정이 워낙 어려워져 문을 닫기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윤 집사는 “6년 넘게 성도 수가 4명뿐이었다. 교회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일꾼을 보내달라고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면서 눈물을 삼켰다.

성도들은 “사례비를 못 받더라도 헌신적으로 목회할 수 있는 목사님을 소개해달라”고 경북 문경의 한 목사에게 부탁했고, 그는 김 목사를 추천했다. 기독대안학교인 글로벌선진학교(GVCS) 문경캠퍼스에서 교사로 있던 김 목사는 잠시 어려운 교회를 돕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성도들이 그를 꽉 붙잡았다. 몇 차례 수요예배와 주일예배를 인도하는 김 목사의 모습을 본 주민들이 “꼭 우리 교회에 남아달라”는 뜻을 그에게 전했고 김 목사는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김 목사는 부임 첫날을 잊을 수 없다. “지난해 4월 8일 이 교회에 오게 됐습니다. 예배당 벽돌 사이로 들쥐가 들락날락하고 밤에는 천장이 들쥐들의 운동장이 됐죠.” 김 목사는 그러나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믿음은 하나”라면서 “한 개인의 계획이나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대은교회에 온 만큼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주님의 말씀을 새기며 목회하고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침례신학대학을 87년 졸업했고 88∼90년 부산 초량동(현재 남산동) 침례병원에서 원목으로 있다가 병원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92∼94년 서울 대치동 강남제일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했고 95년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 남침례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뉴욕 미주한인침례교회에서 사역하다가 2003년 귀국했다.

김 목사는 “미자립교회에서 쉽지 않은 목회를 이어가고 있지만 가족들이 큰 힘을 주고 있어 목회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애(52) 사모는 GVCS 문경캠퍼스에서 생활담임교사를 맡고 있고 아들 요한(24)씨는 서울의 한 교회에서 영어예배 강사로 사역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새해 우리 교회의 목표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 사랑이 넘치는 교회, 위대한 부흥을 이루는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도움을 받는 교회가 아닌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볼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이 교회에 온 만큼 다시 하나님이 다른 곳으로 보내시기 전까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극복해나가겠습니다.”

▶대은교회 가는 길

서울에서 승용차로 출발할 경우 3시간 정도 걸린다. 경부고속도로 대전 방면으로 가다가 신갈JC에서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여주JC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 방면으로 진입한 뒤 점촌함창IC로 빠진다. 나한교차로에서 ‘안동·점촌(문경시청)’ 방면으로 우회전, 3번 국도를 타고 2.3㎞ 가다가 사아매교차로에서 ‘안동·예천’ 방면으로 진입, 함창로를 따라 4㎞ 이동한다. 이어 34번 국도를 타고 6.4㎞ 가다가 용궁1교 앞에서 ‘강당마을’ 방면으로 들어간 뒤 용궁면보건지소 방면으로 우회전 한다. 924번 지방도로로 달리다 회룡포 방면으로 우회전해 5㎞ 간후 무지길을 따라가면 교회가 보인다.

예천=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