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비만의 역설

입력 2013-01-04 18:45

‘1984년’과 ‘동물농장’의 저자 조지 오웰은 “식습관을 바꾸는 일이 왕조를 바꾸거나 종교를 개혁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수백만년 동안 먹지 못해 걱정했던 인류가 지금은 너무 많이 먹어 문제라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한 것이다.

비만을 질병으로 처음 경고한 사람은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다. 그는 “비만은 그 자체로 질병일 뿐 아니라 다른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징후”라고 했다. 하지만 인류는 오랫동안 굶주림과 싸워왔기 때문에 고대 동아시아뿐 아니라 유럽 중세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에도 뚱뚱한 것이 부와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져 상류층에서 뚱보가 흔했다.

서구사회에서 날씬한 사람이 이상형으로 인식된 것은 19세기 들어서다. 19세기 중반 벨기에 수학자 아돌프 케틀레는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눠 지방 양을 측정하는 체질량지수(BMI)를 고안해냈다.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부인 엘리자베스는 살찌는 것을 극도로 혐오해 혹독한 다이어트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렌지, 육즙, 계란 흰자 등으로 끼니를 대신했고, 매일 아침 침실에서 매트와 평균대를 이용해 운동하고 몇 시간씩 승마와 펜싱을 했다. 그 당시로는 비정상적인 172㎝ 큰 키에 네 번의 임신 이후에도 평생 50㎏ 이하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허리 사이즈는 16인치였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비비안 리 허리가 18인치였으니 ‘개미허리’에선 한 수 위다.

최근 미국 연방 질병통제예방국 연구진이 전 세계 300만명과 27만건의 사망 사례를 담은 97건의 기존 연구 결과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과체중(BMI 25∼30)인 사람이 정상 범위(18.5∼25)에 있는 사람보다 먼저 사망할 확률이 6%가량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물론 BMI가 35 이상인 고도 비만인 사람이 정상체중 사람보다 일정 기간에 사망할 확률은 29%나 높았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 비만세를 부과하는가 하면 무리하게 살 빼기를 하다 사망했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요즘 통념을 뒤집는 결과다. 그렇다고 다이어트하겠다는 새해 결심을 작심삼일로 끝내지는 마시라. 과체중이 만병의 근원인 비만으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