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 칼럼]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여라
입력 2013-01-04 18:25
‘시간은 강물처럼 그에게 속한 아이들을 모두 데려간다’는 서양의 속담처럼 순식간에 한 해가 흘러가고 새해 아침이 밝았다. 2013년 새해도 여느 때처럼 많은 도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문뜩 떠오르는 것은 주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파송하면서 하신 말씀이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 10:16) 이리떼들이 득실거리는 세상 가운데로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양 같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제자들이 낡은 질서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 속에 나아가 옛 질서의 수레바퀴에 차여 찢겨짐을 당하지 않도록 뱀의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뱀의 지혜를 가지고 슬기롭게 대처하지 않게 될 때 가차 없이 세속 질서의 희생물이 되어버리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구조의 실체를 똑바로 꿰뚫어볼 수 있는 지혜를 갖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둘째,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세상의 악한 질서에 사로잡혀도 안 되고 타협해서도 안 된다. 어떤 경우에라도 비둘기의 순결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비둘기의 순결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제자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비둘기의 순결이 본질적으로 위협받게 될 때 순교의 각오로 맞서야 한다.
뱀의 해를 맞이해 한국교회가 뱀의 지혜를 발휘하기 위해 뱀으로부터 받는 도전이 있다. 뱀은 껍질을 벗음으로써 성장하고 생존할 수 있다. 뱀은 독이 있는 먹이를 먹었거나 피부가 상하게 되면 껍질을 벗지 못하고 자신의 껍질에 갇혀 죽고 만다.
새해를 맞이하여 한국교회가 뱀으로부터 갱신의 법칙을 배워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생명력은 ‘개혁되었고 그리고 항상 개혁되는 교회’의 정신을 통해 이어져 간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일 한국교회가 자체 갱신을 이루지 못한다면 껍질을 벗지 못해 자신의 껍질에 갇혀 죽음을 면치 못하는 뱀처럼 되어버리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교회 갱신의 구체적인 노력은 개교회 차원에서나 교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도 있으나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연합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총회는 한국교회가 연합적인 차원에서 갱신을 단행하여 통일된 하나의 연합기구의 탄생을 통해 일치를 세상 속에 증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개신교를 대표하는 연합기구가 두 개에서 3개로 나누어진 현실 속에서 이번 기회를 계기로 하나의 연합기구로 재편된다면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 다시 희망을 주는 교회로 우뚝 서는 계기가 되리라고 믿는다.
역사상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는 99대 1이라는 신자유주의 질서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 속에서 비둘기의 순결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과제는 힘겹고 벅차다. 이 질서 속에서 소외되고 밀려난 사람들에 대한 자선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힐링을 통한 평화가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 실현을 위해 부름 받은 교회는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은혜로운 구조의 실현을 위한 투쟁을 멈출 수 없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의 실현이야말로 이 땅위에 있는 교회들이 힘을 합하여 이루어가야 할 선교적인 지상과제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복음 진리의 빛 아래서 비둘기의 순결을 새롭게 회복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전진을 가로막는 것은 닫힌 보수와 닫힌 진보이다. 거짓 보수와 거짓 진보가 활보하고 있는 현실이 문제이다. 비둘기의 순결을 지닌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가 만날 때 새로운 역사의 지평을 여는 순결한 동력이 탄생될 것이다.
2000년 전에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 파송하시면서 주셨던 주님의 말씀은 오늘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유효하다. 이리떼들이 지배하고 있는 2013년이라는 냉혹한 현실 가운데로 파송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을 가지고 이 세상 속에 나아가 하늘나라를 실현을 위해 헌신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목포예원교회목사·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상임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