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發 화폐전쟁 틈바구니… 새파랗게 질린 中企

입력 2013-01-03 19:43


“원화절상 및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이 감소했습니다. 자동차 원단 사업은 예전의 증가세를 보이지 못하고 기로에 서 있습니다.”(자동차용 직물 제조업체)

“원재료 가격 상승과 원화절상 등의 어려움으로 매출액은 전기 대비 23%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35억원 적자, 당기순이익은 149억원 적자 전환했습니다.”(의류 염색·제조업체)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 회사는 환율 하락 시 매출액이 감소돼 표시됩니다.”(의약품 제조업체)

지난해 말부터 공시가 시작된 각 중소기업의 분기 보고서에 ‘환율 하락에 따른 매출 감소’라는 표현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원화가치 상승으로 죽을 맛이라는 하소연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마구잡이로 돈을 찍어내는 ‘통화전쟁’에 휩싸이면서 우리 중소기업의 ‘새우등’이 터지고 있다. 수출 중소기업은 적정 원·달러 환율로 1102원을 얘기하지만 이미 마지노선이 무너졌다. 금융투자업계는 연말까지 환율이 평균 1050원 안팎으로 떨어질 것이며, 최악의 경우 1000원을 밑돌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최근 최후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찾은 보증시장에서조차 돈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속출한다. 보증 부실률은 2008년 금융위기 수준에 육박한다.

◇중소기업 ‘환율 폭탄’=지난해 10월부터 계속된 환율 하락세는 올 들어 더욱 가파르다. 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16개월 만에 최저치인 1061.5원으로 장을 마쳤다. 새해 개장 이후 2거래일 만에 9.1원이 하락했다.

환율의 추락은 수출 중소기업들에 가장 큰 걱정거리다. 최근 국제무역연구원이 수출 실적 50만 달러 이상인 기업 1053곳을 조사한 결과 14.8%가 가장 큰 애로요인으로 환율 변동성을 꼽을 정도다.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분석에 따르면 수출 중소기업들이 제시한 손익분기점 환율은 1102원이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0월 25일부터 1000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사정이 나빠진 중소기업은 신용보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다. 담보물을 받지 않고 중소기업대출을 지원하는 신용보증기금의 보증 부실률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 4.9%다. 신보의 보증으로 금융회사에서 돈을 대출받았지만 원금을 1개월 이상 연체하거나 이자를 2개월 이상 연체하는 중소기업이 20곳 중 1곳인 셈이다. 지난해에만 1조7504억원이 부실액으로 분류됐다.

신보의 전체 보증액 중 부실보증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9년 4.4%, 2010년 4.7%였지만 지난해부터 4.9%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에는 5.0%였다. 중소기업들이 2008년 수준의 경기 한파를 체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신보 관계자는 “실물경기 침체에 따른 투자 및 수요 부진, 경제주체의 심리 위축에 따라 중소기업의 실적 둔화 및 자금 사정 악화가 예상된다”며 “환율 하락까지 겹쳐 향후 부실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환율, 1000원 깨질 수도”=올해 환율이 1000원 아래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상수지가 계속 흑자이고 선진국의 양적완화 기조가 유지되면 외국인의 주식·채권 투자자금이 유입될 것”이라며 “이에 따라 환율은 더욱 하락해 1000원 선 아래로 내려올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당분간 환율의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NH농협선물은 전망 환율의 최저치를 1020원으로 제시하면서 “이 정도까지 밀릴 수 있는 환율임을 미리 전망하지 못한 과오를 사과한다”고 밝혔다. 한국투자증권은 1030원, 우리선물·KDB대우증권·삼성증권은 1050원을 올해 말 환율 전망치로 제시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자체 전망하는 경기는 올해도 잿빛 수준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중소 제조업체 1344곳을 대상으로 경기 전망을 설문조사한 업황전망건강도지수(SBHI)는 82.4를 기록했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평균 업황은 100으로 나타난다. 중소기업들이 제시한 SBHI는 3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급등락이 없이 예측 가능하도록 정부가 환율을 컨트롤해줬으면 좋겠다”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으니 이에 걸맞은 대책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