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막는 입양특례법] 전화상담 미혼모들 출생신고 얘기하면 ‘뚝’ 끊어

입력 2013-01-03 21:38


“어떡하라고요? 그럼 이 아기 그냥 버려요?”

지난해 8월 개정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 입양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들이 자주 듣는 말이다. 법 개정으로 입양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친부모들이 의무적으로 아기의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입양의뢰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혼모들은 아기를 자신의 호적에 올리기 두려워한다. 한 사회복지사는 3일 “30분 넘게 상담을 받다가도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고 알려주면 전화를 뚝 끊어버린다”며 “아기를 그냥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미혼모도 있고, 죽어도 출생신고는 못하겠다며 울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미 기관에 맡겨진 아기의 친부모를 찾는 작업도 쉽지 않다. 법 개정 이전에 출생신고 없이 기관에 맡겨진 아기들도 새 가정으로 입양되려면 먼저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입양기관 관계자는 “1∼2년 전에 아기를 맡긴 친부모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연락이 닿아도 출생신고를 하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제 와서 왜 괴롭히느냐”는 식으로 나오는 이들도 있다.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아기들은 입양대기 상태로 아동보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홀트아동복지회에만 입양대기 상태인 아기들이 300명이 넘는다.

미혼모들이 출생신고를 꺼리면서 법 개정 이후 홀트아동복지회와 대한사회복지회에 접수된 입양의뢰 건수는 절반으로 줄었다. 홀트복지회의 경우 입양의뢰가 매달 평균 60건이 넘었지만 8월 이후 30건 안팎에 그치고 있다. 대한복지회도 40건 가까이 유지되던 월평균 입양의뢰 건수가 10건대로 떨어졌다. 입양의뢰자의 대부분이 미혼모인 상황을 감안하면 궁지에 몰린 많은 미혼모들이 입양기관에 아기 맡기기를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국내 입양이 이뤄진 1548건 가운데 1452건(93.8%)이 미혼모가 낳은 아기였다. 미혼모들이 출생신고를 꺼리게 되면 상당수 아기들이 버려지거나 입양되지 못한 채 어디선가 방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8월 이후 서울 신림동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가 무려 42명이나 됐다. 법 시행 전 한 달에 버려지는 아기가 2∼3명에 불과했으나 이후 5∼14명으로 늘었다. 그나마 베이비박스에 두고 가면 아기는 안전하지만 그런 방법조차 모르는 미혼모들이 아기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실태파악조차 안 되고 있다. 입양기관에선 미혼모들이 입양기관을 거치지 않고 불법으로 아기를 입양시키거나 유기하는 경우가 늘었을 것으로 추정만 할 뿐이다.

홀트복지회 관계자는 “좋은 취지로 개정한 법이지만, 결국 아기를 더 위험한 상황으로 내모는 격이 돼 버렸다”며 “궁극적으로는 미혼모들이 출산 자체를 두려워해 낙태를 조장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런 부작용을 인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진행되던 입양절차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문제점들에 대해 일부 공감한다”며 “각급 지방자치단체에 유기되거나 방치되는 아기들이 얼마나 되는지 면밀히 파악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라며 밝혔다. 이 관계자는 “조만간 아기들을 보호하고 있는 전국 아동시설에 대해 전수조사도 할 계획”이라며 “이미 기관에 맡겨진 아기의 출생신고 부분은 관련 법을 검토해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