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특례법 때문에 아기를 버립니다” 입양 때 출생신고 의무화… 입양 포기→유기 잇따라

입력 2013-01-03 21:55


지난달 25일 오전 5시. 서울 신림동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딩동’ 벨 소리가 울렸다. 마침 성탄절 새벽 기도를 마친 정영란(44·여) 전도사는 벨소리에 반사적으로 1층을 향해 뛰어갔다. 한걸음에 내려가 확인한 베이비 박스에선 성탄(가명)이가 울고 있었다. 베이비박스는 아기들이 유기돼 안타깝게 생명을 잃는 일이 없도록 부모가 아기를 놓고 갈 수 있게 만든 보관함이다.

성탄이는 탯줄도 제대로 묶이지 않은 채 추위에 얼어 온몸이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매서운 한파가 기승을 부린 성탄절이었지만, 성탄이는 얇은 내의 하나에 기저귀 대신 여성용 생리대를 차고 있었다. 세상에 나온 지 4시간도 지나지 않아 온몸에 피도 닦지 못한 채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것이다. 이 교회 이종락(59) 목사와 교회 가족들은 어린 생명을 안고 기도하며 울었다.

여덟 줄짜리 메모를 남기고 사라진 성탄이 엄마는 자신이 미혼모라고 밝혔다. 그날 새벽 2시30분 모텔에서 성탄이를 혼자 낳아 이곳까지 데려왔다고 했다. ‘한순간의 실수였지만 키울 자신이 없어 평생 죄인의 심정으로 기도하고 살겠다’는 메모도 함께 발견됐다. 정 전도사는 “지난해 8월부터 입양허가제가 시행되면서 미혼모라도 자신의 호적에 아기를 올려야 기관 입양이 가능해졌다”며 “이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미혼모들이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두고 가는 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지난달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 5명 중 3명은 ‘입양특례법 때문에 아기를 버리고 간다’는 편지와 함께 발견됐다. 개정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부모는 기관을 통해 아기를 입양 보낼 때, 먼저 출생신고를 하고 자신의 호적에 올려야 한다. 하지만 출생신고를 꺼리는 미혼모들은 기관에 입양을 의뢰하지 못하고 아기를 유기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입양허가제 시행 이후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는 크게 늘었다. 아기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5월을 제외하곤 한 달 평균 2∼3명 꼴이었지만 8월 10명, 9월 14명, 10월 8명, 11월 8명, 12월 5명이 버려졌다. 특히 아기와 함께 남겨진 메모에 ‘입양 특례법에 부담을 느낀다’고 적힌 사례도 8월 이후 총 18건이나 됐다.

3일 대법원에 따르면 개정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 지난 5개월 동안 전국 가정법원에 접수된 입양신청 건수는 총 81건에 불과했다. 법원은 이 중 25건을 허가했다. 법 개정 이전에는 한 해 평균 국내입양 건수가 1400∼1500건이었다. 좋은 취지로 만든 법이 입양을 막고 있는 셈이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