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예산 졸속 처리하고 외유 떠난 의원들

입력 2013-01-03 18:51

즉시 귀국해 국민들에게 머리숙여 사과하라

법정처리시한을 지키지 않은 것은 물론 해를 넘겨 예산안을 졸속처리한 주역들이 예산안 처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아프리카와 중남미로 외유를 떠났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9명이 지난 1일과 2일 두 팀으로 나눠 중남미와 아프리카로 단체 시찰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시내 호텔방을 오가며 밀실 담합을 통해 올해 예산을 확정한 당사자들이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국회 개혁과 새 정치를 입에 달고 살던 이들은 국회 의사당은 내버려두고 값비싼 호텔 방에서 지역구 민원이 담긴 이른바 ‘쪽지 예산’을 처리했다. 예결위원임을 내세워 국방예산 4009억원과 극빈층 지원예산 2824억원을 떼어내 시급하지도 않은 자신과 동료 의원들의 지역구 사업으로 예산을 빼돌렸다. 국민의 혈세로 자기 잇속만 챙긴 정상모리배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해를 넘긴 늑장처리에 밀실·쪽지예산 파동으로 국민적 비난이 쏟아지는데도 따뜻한 남쪽으로 찾아가는 배짱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외유 명분이 예산심사 시스템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다녀올 멕시코, 코스타리카, 파나마, 짐바브웨 등이 우리보다 선진적인 예산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는 전혀 들어본 적도 없다.

입만 열면 국회의원 특권 폐지, 윤리기준 강화를 외치더니 정작 본인들은 엄동설한에 떨고 있는 국민들은 나 몰라라 하고 공짜 외유에 나섰다니 파렴치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한 팀당 7000여만원씩 모두 1억5000만원을 들여 항공료와 체재비로 사용하는 돈도 지난해 예결위 예산 가운데 남은 돈이라고 한다. 쓰고 남은 예산은 국고에 반납하는 것이 원칙 아닌가. 국정감사장에서 행정부 공무원을 향해 예산 불용액을 국고에 넣지 않았다고 고함치더니 정작 자신들이 불법에 앞장선 꼴이다. 이러고도 행정부를 견제하는 의원 본연의 임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비상식적인 국회의원들의 외유가 말썽을 빚은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 예결위 의원들의 행태는 지나치다. 진정으로 국민들을 생각해 재원 투입이 시급한 곳에 골고루 예산을 배분하고 방대한 정부 살림살이를 견제했다면야 의원외교 차원에서 선진국을 찾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번 예산 국회는 세비 30% 삭감 공약은 지키지 않고 평생 매달 120만원씩 받는 의원연금은 그대로 통과시키는 등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이런 누더기 같은 예산을 만들어놓은 주역들이 출장 목적도 불분명한 해외시찰을 떠났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평소 조금만 의견 차이가 있어도 몸싸움을 마다않던 의원들이 한겨울에 나랏돈으로 외유 가는 데는 의견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국민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즉시 귀국해 국민들에게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같은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외유를 고집한다면 다음 선거에 반드시 국민적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