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원 여직원 사건, 뒷말나지 않게 처리하길
입력 2013-01-03 18:49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씨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인터넷에서 불법적인 활동을 한 정황을 경찰이 포착했다. 김씨는 오늘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다. 경찰은 이미 김씨가 활동했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서버에 대해 영장을 발부받아 압수수색까지 마쳤다.
이 사건은 대선을 1주일 앞두고 민주통합당이 “국정원 여직원이 지난 3개월여 동안 개인 오피스텔에서 야권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통해 여론을 조작했다”고 주장하며 불거졌다. 민주당 당직자들은 문제의 오피스텔 앞에서 김씨와 대치해 불법감금 논란까지 일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문재인 전 후보는 생방송으로 진행된 TV토론에서 치열하게 공방을 벌였다. 경찰이 “김씨가 비방 댓글을 단 흔적이 없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은 일단 멈췄지만 선거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없어지지 않고 있는 후진적 선거행태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국정원은 군사독재 시절에나 가능했던 정치공작과 선거 개입이 아직도 논란거리로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끄럽게 됐다. 정작 대다수 유권자들은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었던 반면 정치인들은 사실 여부가 확인되기도 전에 상대방을 비난하고, 이해득실만 따지며 거친 말로 서로를 몰아세워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특히 경찰은 필요한 조사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수사 결과를 서둘러 발표해 비난을 자초했다. 발표 시점은 대선을 3일 앞둔 지난달 16일 오후 11시로 여야 후보가 마지막 TV토론에서 이 사건을 놓고 공방을 벌인 직후였다. 심지어 발표 과정에서 경찰 수뇌부의 의지가 수사팀에게 전달돼 서둘러 발표하게 됐다고 한다. 경찰은 신속히 수사 결과를 발표하라는 여론에 부응했다고 해명했지만 선거가 끝난 뒤 김씨의 불법적인 활동 정황을 포착하고,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까지 발부받은 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은 이번 사건에서 불거진 모든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과연 국정원 직원이 인터넷에 댓글을 달며 여론을 조작하려 했는지, 판세가 불리하다고 생각한 민주당이 “국가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며 흑색선전을 한 것인지 국민들이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선이 끝난 만큼 시간에 쫓기지 말고 차분하게 수사해 더 이상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사건에 관련된 여야 정치인과 국정원 등은 확정된 사실관계를 토대로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특히 정치권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구태의연한 모습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선거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