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더 빅 이슈’

입력 2013-01-03 18:51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올 겁니다.” 파는 사람이 없는 빨간색 가방수레 앞에서 그냥 가려는 참이었다. 다급한 목소리에 발길을 돌려 다시 가방수레 앞에 섰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던 아저씨는 빨간 가방의 주인이 시야에 들자 벅찬 목소리로 외쳤다. “아, 왔다. 왔어. 어이, 뛰어와. 얼른.” 제자리로 돌아온 가방 주인이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가방에서 책을 꺼내들자 아저씨는 기다려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빨간 가방의 주인은 집이 없어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이다. 그리고 그가 꺼내든 얇은 책들은 ‘더 빅 이슈(The Big Issue)’, 노숙인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잡지다. 그렇다면 가는 손님 붙잡아 함께 기다려준 반백의 아저씨는 누구일까. 그는 근처에서 노점을 하는 상인이었다. 몇 시간 만에 나타난 첫 손님을 놓칠까봐 자신의 가게를 비워두고 달려와 준 것이다. 대신 팔아줄 수도 있지만 자기 입으로 소리를 내고 자기 손으로 책을 팔아야 진짜 자기 돈이 되어 쌓이는 거라며 기다려주고 응원해 준 것이다.

‘더 빅 이슈’는 존 버드와 고든 로딕이라는 두 영국 청년이 만든 잡지다. 두 사람은 한두 번의 동정 대신 노숙인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1991년 잡지를 창간했다. 런던의 노숙인들은 잡지 1부당 1파운드에 사서 2파운드에 판매해 남은 돈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고 월세방을 얻고 다른 노숙인들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존과 고든은 수많은 런던의 노숙인들에게 다시 한 번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고, 그 희망은 국경을 넘어 여러 나라들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7월 잡지발매가 시작되었고 빅이슈 판매원이 된 노숙인들은 처음 받은 10권의 잡지 판매금을 종자돈으로 한 발, 두 발 집으로, 사회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어떤 이는 사업에 실패해 헤어졌던 가족들과 다시 함께하게 되었고, 어떤 이는 조금씩 돈을 모아 다른 노숙인들을 돕는 사회적 기업을 세우겠다는 꿈을 꾼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목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잡지통역사로 1600원의 희망을 줄 수도 있고, 함께 거리에서 빅이슈를 판매하며 용기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정기구독을 하든 재능기부를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아닐까. 혼자 힘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믿고 기다리는 것 말이다. 거리에서 만난 반백의 아저씨가 이를 일깨워 주었다.

김희성 (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