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간병 족쇄
입력 2013-01-03 18:51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간병이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지난해 말 환자단체연합회가 주최한 ‘샤우팅(Shouting) 카페’에서 만난 한 환자 아버지의 사연이 가슴을 울렸다.
교통사고로 수년째 의식불명인 아들을 돌보고 있는 50대 가장은 “한 달에 300만∼350만원의 치료비를 대느라 아파트를 팔았고,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치료비의 절반 이상인 월 200만원이 간병인 비용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는 “정치권이나 대통령 당선인이 저마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겠다고 하는데, 왜 간병비는 포함되지 않느냐”고 하소연했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지난달 초 뇌출혈로 쓰러진 기자의 부친도 한 달째 대학병원 신경외과 관찰실에 의식 없이 누워 계신다. 허리가 불편한 노모가 간병하겠다고 고집을 피웠으나 자식들의 만류로 1주일 만에 시골로 내려가시고 4명의 자식들이 돌아가며 아버지 곁을 지켰다.
그러나 직장 때문에 항상 병실에 머물 수가 없어서 최근 24시간 간병인을 쓰기로 결정했다. 남자 간병인의 24시간 간병비는 하루에 일반병실 7만원, 관찰실 7만5000원이었다. 이달 1일부터는 5000원씩 더 올라 하루 8만원씩, 한 달에 240만원을 주 단위로 나눠 지불해야 한다.
중증 뇌출혈의 경우 환자가 언제 깨어날지 모르고 의식이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장애가 따르기 때문에 재활 과정에서의 간병 서비스는 필수다. 간병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과 고통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병원이나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월 200여만원씩 드는 간병비는 도시 노동자 한 달 평균 임금의 70%에 해당된다. 가족 중 한 명이 큰 병에 걸려 간병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진료비도 진료비지만 간병비로 집안이 거덜 날 판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간병 서비스 이용 환자는 요양병원 88%, 종합병원 49.7%, 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 등) 72%에 이른다. 웬만한 병원 입원 환자의 반 이상은 간병인을 쓰고 있다고 보면 된다.
고액의 간병비를 낼 형편이 안 되는 가정은 가족 중 누군가 직장을 휴직하거나 퇴직하고 간병을 해야 한다. 이들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년을 병실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생활해야 한다. 간병하다 병 얻는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딸이 부모를, 아내가 남편을 오래 간병하다 보면 어린 자녀들은 방치되기 십상이다. 간병이 족쇄가 돼 한 가정을 옭아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암, 뇌·심혈관질환, 희귀·난치성질환 등 4대 중증질환을 건강보험화해 국가가 100%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여기에 간병비와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등 이른바 3대 고액 비급여 진료비는 빠졌다. 이들 항목을 건보 급여화할 경우 천문학적 재원이 들기 때문이다. 간병인의 간병 서비스를 건보 급여화할 경우에만 4조원이 넘는 돈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최근 고려대 안형식 교수는 간호 인력 충원을 통한 간호·간병서비스 모델을 시행할 경우 연 2400억∼3000억원의 재원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지난해 말까지 건보재정 누적 흑자는 4조원대에 이른다. 복지·민생 정부를 표방한 박 당선인의 의지에 따라 임기 5년 내에 충분히 서민들의 ‘간병 족쇄’를 풀 묘안을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본다.
민태원 정책기획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