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토끼와 거북이 동화, 살짝 비틀어보니 더 재미있네… ‘이야기가 맛있다!’

입력 2013-01-03 18:34


이야기가 맛있다!/글 로알드 달·그림 퀜틴 블레이크/다산기획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로알드 달에 빠졌던 독자라면 이 책에 반색할 것 같다.

책은 토끼와 거북이, 헨젤과 그레텔, 벌거벗은 임금님 등 전 세계 어린이들이 공유하는 동화나 우화, 동시 10편을 골라 패러디했다. “역시, 로알드 달이야!”를 연발할 만큼 시종일관 기발한 상상력과 풍자가 넘쳐난다. 마치 이야기 제조기 같다.

그의 명작 비틀기는 허를 찌른다. 근면 성실을 강조하는 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이’를 패러디한 ‘토끼와 거북이, 누가 진짜 이겼을까’를 보자. 거북이 자신이 거저 (몰래) 먹을 것을 공급받던 채소밭에 어느 날 토끼가 나타난다. 토끼가 당근 콩 등을 먹어치우자 거북이는 그를 몰아내기 위해 경주 내기를 신청한다. 상식적으로 거북이가 질 게 뻔한 내기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비장의 카드는 성실이 아니라 아이디어다. 카센터를 하는 쥐를 찾아가 자신의 등딱지 속에 네 바퀴와 작은 엔진을 달아달라고 부탁한 것. 바로 살아있는 자동차로 자신을 개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교활한 장사꾼인 쥐는 이 사실을 토끼에게 폭로하고 대가로 금전을 받는다. 나아가 시속 75㎞의 ‘거북이 자동차’를 이길 수 있는 묘안을 주고 돈을 더 뜯어낸다. 경기가 이뤄지는 날, 타이어를 펑크 낼 뾰족한 못을 길에 한 자루나 뿌려 놓는다. 이 못은 그러나 토끼의 발에도 상처를 냈고 둘은 어쩔 수 없이 무승부에 동의한다.

저자가 던지는 교훈은 이렇다. “꼭 명심해. 장사꾼한테 말려들지 마. 그들은 항상 이기고, 우리가 항상 잃어.” 초등 3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책의 주제치고는 너무도 가감 없이 현실을 비판해 당혹스러울 정도다. 때로는 원작에 대한 맹목적성을 조롱하기도 한다. ‘헨젤과 그레텔의 요리교실’은 마녀를 화덕 아궁이에 밀어 넣은 원작의 결말이 갖는 잔혹성을 비꼰다. ‘40명의 도적을 깜빡 잊은 알리바바’에서 “열려라, 참깨!” 한마디로 모든 것을 열 수 있게 된 알리바바가 찾아간 곳은 영국 런던의 고급 호텔이다. 나쁜 짓보다는 재미를 원하는 아이들 심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호텔의 방문이 열리며 펼쳐지는 부자들의 행태를 꼬집는다.

저자의 거의 모든 작품에 삽화를 그렸던 퀜틴 블레이크가 이번 작품집에도 참여해 경쾌함과 익살을 더해준다. 번역도 감칠맛 난다. 박진아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