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한국에서 난민 되기, 그 6년 간의 투쟁기… ‘내 이름은 욤비’

입력 2013-01-03 18:34


내 이름은 욤비/욤비 토나·박진숙/이후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욤비 토나(47). 콩고 킨샤사 국립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콩고비밀정보국(ANR)에서일했다. 2002년 정보국 작전을 수행하다가 조셉 카빌라 정권의 비리를 알아채고 이를 야당인 ‘민주사회진보연합’에 전달하려다 발각돼 체포됐다. 국가기밀 유출죄로 감옥에 수감돼 갖은 옥고를 치르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해 한국에 들어왔다.

6년 동안 인쇄 공장, 사료 공장, 직물 공장을 전전하면서도 난민 신청을 했지만 불허됐고 이의 신청마저 기각됐다. 결국 행정소송까지 가서 겨우 난민으로 인정받은 건 2008년 2월 20일. 한국에 온 지 6년 만의 일이다. 그 해 8월에야 콩고 킨샤사 숲 속 오두막에서 피난민처럼 살아가던 가족들을 한국에 불러올 수 있었다. 너무 어렸을 때 헤어진 아이들은 아빠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다.

한국 정부가 난민 신청서를 접수하기 시작한 건 1994년. 그때부터 2012년 5월 기준으로 총 4516명이 난민 신청을 했지만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294명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한국 정부의 난민 심사는 너무나 경직돼 있다. 당시 심사가 종료되지 않은 난민 신청자 수는 1264명. 이들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지금까지 추세대로라면 1264명 가운데 80% 이상은 결국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제3국으로 떠나거나 아니면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본국으로 강제 송환될 것이다. 콩고인 욤비의 사례는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러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6년 동안 욤비는 혼자가 아니었다. 공동저자인 ‘에코맘므’ 박진숙 대표도 물심양면 욤비를 도왔고 욤비가 구술한 내용을 토대로 추가 질문을 던지고 살을 붙였다.

법무부를 상대로 소송을 해서 이기기까지, 욤비가 한국에서 보낸 6년은 외국인 노동자로, 불법 체류자로, 그리고 ‘깜둥이’로 살아야 했던 시간이었다. 욤비의 눈을 통해 우리는 한국 사회의 편협한 민낯을 적나라하게 목격하게 된다. “인터뷰가 끝나면 내용을 확인시켜 주지도 않은 채 한글로 기록된 기록부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기록된 사실이 모두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였다. 한국말로 쓰여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데 서명을 하라는 게 얼토당토않게 느껴졌지만 항의할 처지도 못 됐다.”(167쪽)

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난민을 ‘걸러 내기’ 위해 존재하는 난민 심사제도의 모순, 피부색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심사관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적대적인 태도, 합법적으로 체류할 자격만 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정부의 무책임함은 욤비가 넘어야 할 또 다른 장애물이었다. 이제 욤비는 꿈에 부풀어 있다. 콩고와 마찬가지로 식민 지배를 거쳐 내전과 쿠데타와 독재로 이어진 역사적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한국의 ‘데모크라시’를 공부해 콩고에 알리고 싶다는 꿈이 그것이다.

성공회대학교 아시아비정부기구학 석사 과정을 졸업한 욤비는 현재 경기도 부평의 한 치과병원에서 글로벌마케팅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얼마 전, 막내 딸 아스트리드가 한국 땅에서 태어났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