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로서 본 엄마, 엄마가 된 나’에 관한 단상… 신달자 에세이집 ‘엄마와 딸’
입력 2013-01-03 18:14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프로가 있는지 묻고 싶다. 적확하게 아마추어라고 단정해도 좋은 것이 바로 엄마라는 이름이다. 적어도 내겐 가장 잘난 척 할 수 없는 이름이다.”(25쪽)
딸만 셋인 신달자(70·사진) 시인이 에세이집 ‘엄마와 딸’(민음사)을 냈다. 그 역시 1남6녀 가운데 다섯째 딸이니 그야말로 여자들과 살아온 한평생이다. 딸로도, 엄마로도 살아봤기에 우리 시대 여성의 삶에 대해 이만큼 깊고 정감 있게 들려줄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딸로 살아온 게 칠십 평생이요, 엄마로 살아온 것도 어언 45년에 이른다.
그는 어떤 엄마의 딸이었던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중학교 3학년 때 엄마는 밤에 다락방에서 술에다 수면제를 타 마시고 거의 죽어 있었다. 내가 속치마만 입은 채 맨발로 병원에 달려간 기억이 있다. 새벽 4시였는데 그 새벽 남의 집 병원 대문을 미친 듯이 흔들어 의사 선생님을 깨우고 결국 엄마도 깨어났던 것이다.”(22쪽)
연달아 딸을 낳았기에 딸을 쳐다보기는커녕 미역국도 먹지 못했던 그의 엄마는 집안이 들썩거리게 아버지와 싸울 만큼 기가 셌다. 엄마의 악다구니가 너무도 싫었던 딸은 엄마가 죽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섯 딸을 마산이며 부산이며 서울로 보내 공부를 시킨 어머니의 억척이 없었으면 오늘날 신달자는 존재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 니는 될끼다”라고 입버릇처럼 되뇌던 엄마가 돌아가신 지도 어언 35년. 그는 “나는 내가 눈감는 순간에 엄마도 눈감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로 엄마가 그립다.
그런 그가 “나는 엄마로서 부적격”이라고 말한다. 결혼 9년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면서 뒤늦게 공부를 해 기어코 대학교수가 됐으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밖으로 떠돌 때 정작 그의 딸들은 혼자였던 것이다. “남들은 그렇게 말했다. 딸들의 희생은 하나도 계산하지 않고 내가 고생했다는 말만 너무 들어야 했다. 나는 그것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내가 딸들에게 특히 더 미안한 것은 내 인생이 반영하듯 거칠고 우악스러운 나의 대화법이다. 그것도 폭력이지 않았겠는가.”(64쪽)
기쁨이면서 슬픔이고 아픔인 동시에 희망인 엄마와 딸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를 섬세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낸 신달자의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만든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