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당한 손’에 대한 위로의 시편… 아르헨티나 시인 후안 헬만의 ‘새 한 마리 내 안에 살았지’
입력 2013-01-03 18:14
“헬만의 아들과 임신한 며느리는 197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실종되었다. 수용소에서 태어난 손녀는 이제 23세. 몬테비데오에 거주하며 어제 처음 할아버지와 상봉했다.”
2000년 4월 아르헨티나의 한 일간지가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 발(發)로 전한 내용이다. 상봉은 당시 호르헤 바트예 우루과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루어졌다. 이에 따르면 바트예 대통령의 옆자리에 앉은 그 할아버지는 감정에 북받쳐 잠시 쇼크 상태였다. 할아버지는 아르헨티나의 저명한 시인 후안 헬만(83). 그는 극적인 상봉이 끝난 뒤 취재진을 향해 짧게 말했다. “마침내 여기까지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손녀의 사생활과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976년 쿠데타로 아르헨티나를 집권한 호르헤 비델라의 공포정치에 맞서 저항시를 발표하며 항거했던 헬만. 극우무장단체의 협박 속에 조국을 떠나 멕시코로 망명한 지 13년 만인 1989년 독재정권 붕괴 직후 귀국했을 때 시민들은 “유토피아는 시와 함께 온다”고 적힌 현수막을 걸고 거장의 귀국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국가시인 상’을 수상했을 때 헬만은 수상의 영광을 독재 시절에 희생된 영혼들에게 돌리며 이렇게 말했다. “난 시를 쓰지만 군인이다. 단지 비무장일 뿐. 모든 시인에겐 인류를 위한 보다 나은 길을 개척할 의무가 있다.”
헬만의 아들은 독재정권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총살당한 뒤 기름통에 넣어져 페르난도 강에 던져졌고 며느리 역시 수용소에 수감된 후 다시 바다에 던져져 살해됐다. 당시 두 사람의 나이는 겨우 스무 살. 뱃속에 있던 손녀는 수용소에서 출생한 직후 누군가에게 입양됐지만 헬만은 며느리의 임신 사실만을 전해 들었을 뿐, 그게 손녀인지 손자인지 성별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헬만은 2000년 손녀가 우루과이의 한 가정에 입양돼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유전자 검사까지 마친 뒤 극적인 상봉을 했다. 어느덧 손녀는 스물세 살 성인이 돼 있었다.
이른바 네루다 풍의 감미로운 서정시가 남미대륙을 풍미하던 1950년대에 헬만은 일상의 언어로 저항을 말하는 소위 비판적 사실주의의 시로 중남미에 새로운 시의 물결을 가져온다. 그렇기에 저항의 시대가 끝난 오늘에 와서도 헬만의 시는 큰 울림을 준다.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와 보시오, 하느님이 있다면, 그렇다면 내려와 보시오,/ 난 이 모퉁이에서 굶어 죽을 지경이오,/ 뭣 땜에 태어났는지 도통 모르겠소,/ 거절당한 손을 바라보고 있소,/ 일이 없어요, 일이,/ 좀 내려오시오, 와 보시오,/ 내 꼴을, 이 찢어진 신발을,/ 이 고뇌, 이 텅 빈 창자,/ 내 한 입 채울 빵 한 쪽 없는 이 도시, 온몸을/ 파고드는 신열,/ 이렇게 비를 맞으며/ 잠들어, 추위에 떨고 쫓기니/ 정말 알 수가 없소, 아버지, 내려와 보시오.”(‘어느 실직자의 기도’ 일부)
후안 헬만 시선집 ‘새 한 마리 내 안에 살았지’(문학의숲)는 사랑과 사회참여, 메타시학적인 성찰이 담긴 70여 편의 시들과 그가 1995년에 쓴 ‘손자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수록하고 있다. 1997년 봄 멕시코에서 만난 헬만과 교류하고 있는 구광렬(57) 시인은 “헬만의 시들은 딱딱한 현실적 소재와 주제를 보다 더 부드럽게 만들어 독자의 읽는 부담을 줄여준다”며 “독자는 피해자로서 혹은 가해자로서 좀 더 정교하고 자상한 해석을 가하면서 생략된 사실 부분을 스스로 완성해 나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