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신화로 얼버무린 고대 전쟁사를 다시 쓰다, 생생하게… ‘한국고대전쟁사 1·2·3’

입력 2013-01-03 18:27


한국고대전쟁사 1·2·3/임용한/혜안

백제 건국 설화의 주인공 소서노는 졸본의 연타발의 딸이자 온조와 비류의 어머니이다. 고구려 건국 시조 동명왕의 두 번째 부인이기도 하다. 소서노는 부여에서 탈출해온 주몽과 결혼해 건국을 돕지만 끝내 배신을 당한다. 하지만 운명에 굴하지 않고 두 아들 온조, 비류와 함께 남하해 기원전 18년경 한강변의 위례성에 도착한다. 한데, 무슨 이유에선지 이때 비류는 미추홀(인천)로 간다.

“비류는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안히 살수가 없었다. 위례로 돌아와 보니 도읍은 안정되고 백성은 평안하므로 마침내 부끄러워하고 후회하다가 죽으니 그의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 위례에 귀부했다.”(‘삼국사기’ 중 백제본기 온조왕)

고대 국가는 전쟁을 통한 정복과 통합으로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전쟁사다. 하지만 사료가 전하는 역사는 이처럼 소략하다보니 고대사를 복원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선지 학계도 전쟁사를 외면하다시피 했다. 서술하더라도 국난 극복식의 도덕적·유가적 교훈 위주가 대부분이었다.

역사연구가 임용한은 이런 한계에서 탈피해 고대사야말로 전쟁사 그 자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한국고대전쟁사’ 시리즈 3권을 내놓았다. 달빛을 받아 탄생한 신화나 역사가 얼버무린 행간을 누벼 뼈대를 세우고 팩트를 찾아 살을 붙이고 합리적 추론으로 옷을 입혔다.

그렇게 해서 풀어놓은 백제 탄생의 진실은 이렇다. 비류가 굳이 미추홀로 간 것은 위례성 정착을 불안하게 여긴 탓이다. 그는 바다를 통해 다른 곳으로 남하를 시도한 것이다. 서울(한성)처럼 살기 좋은 땅도 없는데 왜 그랬을까. 저자는 마한왕이 온조에게 보낸 편지에서 단서를 찾는다. “왕이 처음 한강을 건너 발 디딜 곳이 없자 내가 동북 100리의 땅을 떼어 거주하게 했다.”(‘삼국사기’ 중 백제본기 온조왕)

저자는 사료의 문구가 아니라 사료의 배경을 바라본다. 마한왕이 한성 땅을 떼어준 것은 당시의 정치·군사적 상황 때문일 것으로 해석한다. 바로 낙랑과 말갈족의 압박이다. 마한왕은 한강유역에 온조 집단의 정착을 용인하는 대신, 북쪽 방어벽 역할을 해달라고 요구했을 것으로 저자는 추론한다. 실제 온조 집단이 위례성을 세우자마자 말갈족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게 이를 뒷받침한다.

저자는 전쟁사 전문가답게 기존 역사서가 소홀히 다룬 부분도 새롭게 벼리어 낸다. 이를테면 광개토대왕의 치세 기간을 영토확장 측면뿐 아니라 전략·전술 측면에서 다루는 식이다. 광개토대왕은 새 정착지를 찾아 백제 공격에 나서는데, 이때 수군을 이용했다. 수군을 이용해 서해를 따라 백제를 침공하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한성을 점령했던 것이다. 광개토대왕이 거둔 전술적 성공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다. 1차 포에니 전쟁 때 배를 저을 줄 모르는 로마군이 육지에서 노 젓기 연습을 한 끝에 지중해 최고 해상왕국인 카르타고를 격파한 것에 비견할만하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저자는 사료뿐 아니라 벽화에서 흔적을 찾고 현장을 답사해 사료의 빈 공간을 메운다. 고구려 안악3호분에 그려진 행렬도를 통해 당시의 중장기병, 경기병, 중장보병, 경보병 등 군대 체제와 전술을 파악하고 서양의 것과 비교하는 대목에선 저자의 박학이 돋보인다.

책은 고조선에서 시작해 후삼국 재통일까지의 과정을 3권에 나눠 담았다. 특히 삼국의 각축과 중국 수나라 당나라와의 전쟁을 다루는 2, 3권으로 넘어가면서 스케일은 점차 커진다. 수·당과의 전쟁은 세계사적으로도 드문 대전쟁이지만 우리는 살수대첩, 안시성 전투 등 국지적 모습으로만 이해한다. 하지만 책은 수·당이 왜 그토록 집요하게 국운을 걸고 고구려를 침공했는지를 설명한다.

저자는 잘못된 역사 해석이나 의도적 신격화에 반기를 든다. 예컨대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은 지형적 조건으로 봐선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도강작전 동안 적의 병력이 분리된다는 전술 원칙에 근거해 거둔 성공을 신화화하기 위해 후대가 만들어낸 에피소드일 뿐이라고 저자는 잘라 말한다.

책은 역사가의 책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저 사료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복원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며 때론 이를 위해 신화를 벗겨내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이 책은 말하는 듯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