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예산안에 의원연금 128억원 끼워넣은 국회

입력 2013-01-02 18:48

여야, 대국민 사과하고 조속히 정치쇄신 나서야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지난해 5월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이 공통적으로 약속한 사항이 있다. 국회의원 연금 개혁이 그것이다. 연 1억5000만원 이상의 세비를 받으면서도 한 푼의 적립금을 내지 않은 채 65세부터 평생 나랏돈으로 매월 120만원의 연금을 받는 것에 대해 “지나친 특혜”라는 여론이 높아지자 여야가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합리적 범주 내에서 국회의원 연금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고, 민주당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하루만 국회의원을 해도 매월 연금을 지급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초선 의원 20여명은 19대 국회의원부터 연금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연금 개혁 외에 국회의원에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겠다거나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과 겸직 허용 조항을 손보겠다는 등의 다짐도 있었다. 여야의 기득권 내려놓기 경쟁으로 일각에선 정치권이 비로소 정신을 차린 모양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하지만 실천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리고 ‘안철수 현상’이 정치권을 강타했다. 주지하다시피 ‘안철수 현상’은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 열망의 표현이요, 놀고먹으면서 제 밥그릇 챙기기에 몰두해온 기성 정치권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앞 다퉈 국회의원 특권 포기 등이 담긴 정치쇄신안을 내놓은 것도 이런 민심을 의식한 결과였다. 두 후보가 똑같이 공약한 내용은 대선 이전이라도 여야가 서둘러 입법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이행되지 못했다.

국회의원 연금 개혁은 18대 국회 때에도 수차례 발의됐으나 무산된 바 있다. 그래서 올 대선이 끝난 뒤 ‘이번에도 말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있겠구나’라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 이런 걱정이 현실로 나타났다. 여야가 해를 넘겨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국회의원 연금 128억원을 슬쩍 끼워 넣은 것이다. 자신들에게 지급될 ‘공짜 연금’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선거 이전에 여야가 한목소리로 강조했던 연금 개혁이 정치적 쇼에 불과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심하게 말하면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공분(公憤)을 살 만한 일이다.

정치권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행태에 국민들은 분노와 절망감을 쏟아내고 있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다 한통속, 썩은 정치세력들’이라거나 ‘국회 폐지 운동을 벌이자’ ‘그래서 안철수’라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원내사령탑인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와 민주당 박기춘 원내대표는 연초부터 국민들을 암울하게 만든 데 대해 사죄하고 국회의원 연금 예산을 전액 없애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아울러 대선 직전 여야가 의견을 접근시킨 국회의원 세비 30% 삭감 및 정수 축소, 무노동 무임금 원칙 도입도 서둘러야 한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