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전석운] 문용린의 오락가락은 유감

입력 2013-01-02 18:48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선거캠프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박 당선인의 교육공약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그래서인지 문 교육감의 공약은 박 당선인의 교육공약과 유사한 게 많다. 박 당선인의 ‘자유학기제’와 문 교육감의 ‘중1 시험 폐지’가 대표적이다.

자유학기제는 중학교 3년 중 한 학기 동안 중간·기말고사를 치르지 않고 진로를 탐색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1 시험 폐지는 진로탐색을 위한 기간을 구체적으로 중학교 1학년으로 명시하고 이를 위해 지필고사를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문 교육감은 출마 일성으로 중1 시험 폐지를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다.

약속 번복은 공직자 자질 문제

문 교육감은 그런데 당선 후 이 공약을 철회해 구설에 올랐다. 문 교육감은 지난달 27일 시험폐지를 반대하는 안양옥 교총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공약의 정확한 타이틀은 ‘중1 시험 폐지’가 아니라 ‘중1 진로탐색 집중 학년제’이며 중1 때 객관식 시험을 완화해 학생들이 진로와 인생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로탐색을 위한 정책수단이 시험 ‘폐지’가 아니라 ‘완화’라는 해명이었다.

그러나 문 교육감의 해명은 문제가 있다. 유권자들이 그의 공약을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니라 그가 말을 바꾼 것이다. 선관위에 제출된 그의 선거공보에도 분명히 ‘중학교 1학년은 시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공부보다 진로탐색의 시간으로 (활용하겠다)’라고 돼 있다. 그의 공약 ‘행복교육 만들기’의 첫 번째 항목(도덕·인성교육 활성화를 위한 학교체제 개혁)에 들어있다.

선출직 공무원이 공약을 모두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어떤 공약은 이행 과정에서 현실과 맞지 않거나 당초 취지를 살릴 수 없다면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유권자들에게 이해를 구해야 한다. 문 교육감은 이런 절차를 밟지 않았다. 그의 공약에 대한 찬반 논란은 선거과정에도 있었기 때문에 일부 단체의 반대가 사후 입장번복의 핑계가 될 수 없다. 그저 반대자들이 듣기 좋게 그때마다 소신과 입장을 바꾸는 것은 아닌지 그의 처신이 참 가볍다는 느낌이다.

공직자로서 가벼운 그의 처신을 예전에도 본 적이 있다. 문 교육감은 2000년 1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교육부 장관에 발탁됐다. 취임한 지 열흘 만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기여입학제 허용의사를 밝혀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진의 확인을 요청하는 기자들의 질문이 잇따르자 부정적인 파장을 예상한 듯 부랴부랴 발언을 철회했었다. 상황에 따라 소신을 폈다가 접기도 하는 그의 행동을 13년 만에 다시 보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문 교육감의 이번 해명은 당시 발언 번복 해프닝보다 심각하다. 유권자와의 약속을 저버린 공직자의 신뢰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의 나머지 공약도 사정에 따라 폐기되거나 유보되지 말란 보장이 없다.

특히 그가 시험폐지 공약을 번복하는 바람에 박근혜 당선인의 자유학기제 공약에 맞서는 입장이 돼버렸다. 자유학기제는 중간·기말고사를 치지 않는 것이다.

朴 당선인 공약과도 모순돼

만일 박 당선인이 그의 공약대로 취임 이후 자유학기제를 추진한다면 문 교육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대통령을 설득해 자유학기제 공약을 취소하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시범학교를 선정해 시험폐지를 시행할 것인가.

학생들에게 진로탐색의 여유와 기회를 주자는 문 교육감의 공약 취지는 좋다. 시험폐지 방안이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지긴 했지만 실천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 교육감은 백년지대계를 내다보는 교육전문가답게 좀더 신중했으면 좋겠다.

전석운 정책기획부장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