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임항] 환경정의와 경제정의
입력 2013-01-02 18:40
세상의 모든 편리한 것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사람들은 편리한 발명품이나 신기술, 새로운 화학물질을 어떤 신비한 후광과 함께 바라본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나서도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폐해나 위해성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기적의 살충제’ DDT, 새 집이나 새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자동차 배기가스, 석면 등이 모두 같은 경로를 거쳤다.
최근에는 디지털 전자기기의 심각한 환경오염 사례와 건강피해에 대해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엘리자베스 그로스만이 쓴 ‘디지털 쓰레기’에 따르면 광산에서 원석을 채굴해 만든 노트북을 사용하다 쓰레기로 버리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의 유독성 물질이 만들어진다. 2g짜리 마이크로칩 하나를 생산하기 위해 수십 ㎏의 폐기물이 배출되고, 여기에 포함된 화학물질은 음식과 인체로까지 유입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환경이나 건강상 피해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제공한 자가 그 피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오염자부담원칙(PPP)을 여러 법령과 제도에 반영하고 있다. 이런 오염자부담원칙은 환경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
경제 분야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다. 담합이나 불공정행위를 통해 재화와 용역의 가격을 턱없이 비싸게 받는 것이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정치권이나 정부가 공공서비스 가격을 원가에 비해 싸게 받도록 강제할 경우 그 폐해는 간접적이고, 따라서 국민들이 잘 알기 어렵다. 원가보다 싸게 공급되는 수도요금, 산업용 및 농업용 전기요금, 지하철 요금과 노인무료 승차제 등은 불가피한 적자 상환부담을 결국 세금형태로 국민 전체에 떠넘긴다.
전기요금체계를 보면 전력회사들이 연간 1조원에 가까운 돈을 전기다소비 기업들에게 직접 퍼주고 있는 셈이다. 그 외에도 싼 전기요금 탓에 기업들이 자가발전을 외면하고 전기를 너무 많이 쓰는데 따른 국가적 손실도 크다. 전기낭비에 따른 발전소 추가건설비용과 대기오염 악화도 빠뜨릴 수 없다. 수도요금과 지하철요금도 당장은 싼 게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물 값이 싸면 물 낭비를 부추겨 결국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댐 건설의 빌미가 된다. 지하철공사의 만성적 적자는 안전운행을 위한 인적·물적 투자를 위축시키고, 지하철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건강을 위협한다. 또한 지하철 역사에서 일하는 청소용역업체 근로자들을 최저임금, 혹은 사실상 최저임금 미만의 저임금에 묶어놓는다.
선진국과의 경제력 격차를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공공요금은 너무 싸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화장실을 이용할 때에도 돈을 내야 한다. 미국의 일부 공항에서는 카트를 이용하는 데도 돈을 낸다. 왜 그럴까. 선진국일수록 물건 값은 싸고 인건비는 비싸다. 서비스 요금이 높아져야 국민소득이 높다.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도 서비스에 대해 제 값을 치르겠다는 의향을 가져야 한다.
‘공짜점심’처럼 싼 서비스 요금에는 이미 대가가 치러졌거나, 앞으로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선심성으로 베푸는 특혜이거나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거나 값싼 서비스는 국가 부채를 늘리고 경제정의를 훼손한다. 또한 양극화를 부추기며 절약정신과 근로의욕을 꺾는다. 수혜자부담 원칙을 확립하고 부당한 특혜를 폐지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복지예산 증액보다 더 시급하다.
국회가 택시에 대한 ‘대중교통급’ 지원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택시가 왜 대중교통인지도 의문이지만, 그래도 살 만한 사람들이 주로 타는 택시에 1조9000억원을 지원한다니 어이가 없다. 돈 벌려고 무리하게 증차한 사업자가 적자의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과감한 감차를 통해 공급을 줄이고 택시요금은 오히려 인상하는 게 옳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