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코끼리, 회색곰, 판다곰과 같은 ‘카리스마적 대형동물’들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따라서 이들 동물은 많은 곳에서 직접 관광자원이 되기도 한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은 “회색곰, 늑대, 대왕오징어 등 희귀동물이 우리 곁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자연이 살아 있다는 상징이 되고 우리 세계가 안전할 것이라는 안도감을 준다”고 말했다. 윌슨은 이를 ‘회색곰 효과’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 남은 카리스마적 대형동물의 대표는 반달가슴곰이다.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의 동기와 성과=2001년 국립환경과학원 조사결과 야생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에 5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아 외부 이입을 통해 증식하지 않으면 20∼30년안에 멸종이 불가피했다. 복원사업의 초창기부터 관여했던 국립생물자원관 한상훈 동물자원과장은 “순수한 국내 야생 반달가슴곰의 후손을 빨리 확보하자는 게 복원사업의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34개체를 방사해 18마리가 살아남았고, 5마리는 자연 부적응으로 회수됐으며, 11마리가 폐사했다. 2009년부터 자연에서 태어난 반달가슴곰 2세가 모두 10마리였는데, 이 중 2마리가 죽고 8마리가 남았다. 따라서 자연방사 1세대 18마리와 자연에서 태어난 2세대 8마리를 합쳐 모두 26마리가 지리산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2세대 8마리 중 한 마리가 원래 지리산에 살고 있던 야생 반달가슴곰을 아버지로 한 새끼임이 이번에 밝혀진 것이다. 이로써 지리산 토종 반달가슴곰의 혈통이 보존되고, 유전적 다양성이 증대됐다.
한 과장은 “2020년까지 지리산 내 반달가슴곰의 개체수를 최소존속개체군인 50마리까지 늘린다는 목표는 99% 달성한 셈”이라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 죽는 개체보다 태어나는 개체가 더 많아졌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김승희 생태복원부장은 “지금 2년째 (곰의) 폐사가 없는데다 내년에도 새끼가 3마리가량 태어날 것으로 보여 2020년 목표는 앞당겨 달성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지리산 반달가슴곰이 50개체가 되면 설악산에도 반달가슴곰을 방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벌꿀과 쌀 등 농작물을 훔쳐가거나 자연에 적응하지 못해 등산객의 배낭을 노리는 등 말썽을 피우는 개체들이 많았다. 환경부가 농작물피해보상보험을 도입하고 전기펜스를 설치하는 등 대책을 시행하면서 주민피해는 줄었다. 지난해 지리산 인근 지역주민 대상 인식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반달곰 복원사업의 지속적 추진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2006년 조사 당시에는 같은 문항에 46.1%만 동의했다.
한편 지리산 반달가슴곰에 대한 유전자 분석결과 소수의 특정 수컷이 번식기회를 독점하는 것으로 밝혀져 근친교배에 의해 유전적 다양성이 낮아질 우려도 제기됐다. 공단은 2018년까지 다양한 유전자를 지닌 반달가슴곰들을 매년 4개체씩 방사해 여러 연령층의 개체들을 고루 확보할 계획이다.
◇산양, 재도입을 통한 생태축 복원=산양의 경우 원래 서식처인 백두대간의 곳곳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재도입을 통한 생태축 복원사업을 추진중이다. 복원사업 시작 당시 지리산과 설악산에 5개체 안팎밖에 남지 않았던 멸종위기의 반달가슴곰과 달리 산양은 국지적으로 멸종위기상태였다. 2002년 국립환경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산양은 DMZ(비무장지대)와 양구·화천지역, 설악산, 울진·삼척·봉화지역 등 4개 지역에 800마리 이하 개체들이 고립돼 있는 상태였다.
이에 따라 산림청은 1994년부터 98년까지 에버랜드에서 증식된 산양 6마리를 월악산에 방사했다. 산양은 15마리로 늘어났지만 2003년 이들에 대한 조사결과 근친교배로 인해 유전적 다양성이 거의 없었다. 공단은 2006년부터 생태축 복원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7년에는 양구·화천지역에서 포획한 산양 10마리를 월악산에 방사했다. 지난해에는 설악산과 울진에서 겨울철 혹한기에 탈진해 구조된 개체 등 4마리를 추가로 월악산에 방사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월악산 산양은 38마리로 늘었다. 더 반가운 것은 방사한 산양 가운데 2개체가 최근 문경새재로 이동하는 등 산양 서식처들이 서로 연결될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월악산사무소의 이배근 박사는 “월악산 산양 개체수가 1차로 최소존속개체군인 50마리, 2차로 200마리 이상 확보돼야 복원에 온전하게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의 사례, 늑대와 흑곰의 복원=미국정부는 1973년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된 늑대의 복원필요성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거쳐 1994년 복원사업 추진을 결정했다. 이듬해부터 2년간 캐나다 앨버타주 등에서 포획한 늑대 66마리를 옐로우스톤, 아이다호 중부, 몬태나 북서부 등 3곳에 방사했다. 2002년에는 늑대 개체수가 232마리로 늘어 목표를 달성했다. 동시에 늑대는 멸종위기종 목록에서 해제됐다.
핵심종인 늑대의 복원과 함께 포식자와 초식동물의 균형이 인간의 간섭이 있기 전으로 되돌아갔다. 아메리카 들소, 무스, 엘크 등 초식동물 개체수가 적당하게 조절됐다. 늑대가 먹고 남긴 동물사체는 흑곰, 불곰, 코요테, 여우 및 썩은 고기를 먹는 곤충 등의 먹이가 됐다. 옐로우스톤국립공원에서는 특히 겨울철에 쉽게 관찰되는 늑대를 보기 위한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미국 아칸소에서는 1958년부터 10여 년간 흑곰의 복원사업이 펼쳐졌다. 미네소타 등에서 매년 20∼40마리의 야생 흑곰을 잡아 총 254마리를 오자르크 등 3곳에 방사했다. 1988년에는 흑곰 개체수가 2500마리로 늘어났고 관광객이 덩달아 증가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
지리산 야생곰 후손 확보… 2020년 개체수 50마리 ‘청신호’
입력 2013-01-02 1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