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천년 죽어 천년 ‘중용의 道’ 지킨다… 덕유산 주목으로부터 배우는 새해 삶의 지혜

입력 2013-01-02 18:32


덕유산 주목이 500년 전 선비처럼 꼿꼿한 자세로 발아래 백두대간을 지그시 응시한다. 죽어 다시 천년을 살고 있는 주목의 줄기는 화석처럼 단단하다. 매서운 북서풍에 가지는 반대 방향으로 뻗었지만 줄기는 결코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다. 촘촘한 나이테에 천년 세월의 풍상을 담은 고사목의 강직함과 넉넉함 때문일까. 죽은 가지에서 피어난 설화가 백두대간 운해를 배경으로 새해 연하장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소나무 중 으뜸이라는 금강송보다 더 오래 살고 더 붉은 나무가 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生千年 死千年)’을 산다는 주목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럼에도 선인들의 글이나 그림에서 주목을 만나보기는 어렵다. 고고한 품격의 주목이 덕유산을 비롯해 설악산, 함백산, 태백산, 소백산, 지리산 등 인간의 접근이 힘든 해발 1300m 이상의 고산에 뿌리를 내린 까닭이다.

“삼계의 위쪽으로는 적목이 대부분이어서 올라갈수록 숲을 이루어 봉우리 밑에 이르러 극성하다. 이 나무는 몸뚱이는 붉고 잎은 노송나무 같으며 크기는 서너 아름쯤 된다. 가지와 줄기가 기괴하고 구불구불하니 평소 못 보던 것들이다.”

조선 명종 때 선비인 임훈(1500∼1584)은 1552년 초가을에 덕유산에 올라 ‘덕유산 향적봉 등정기’를 남겼다. 그가 등정기에서 처음 보는 나무라고 기록한 적목(赤木)은 다름 아닌 주목이다. 향적봉에만 사는 나무라 하여 향목(香木) 또는 적목(積木)으로 불리는 덕유산 주목은 1000여 그루. 향적봉 8부 능선에서 정상까지 수령 300∼500년의 살아 있는 주목과 죽어 천년을 살고 있는 고사목이 어우러져 생(生)과 사(死)가 어우러진 숲을 이루고 있다.

덕이 많고 너그럽다는 뜻의 덕유산(德裕山)은 누구에게나 오름을 허락하는 넉넉한 산이다. 무주덕유산리조트에서 스키어들과 함께 곤돌라를 타고 20분쯤 오르면 ‘눈 덮인 하늘 봉우리’란 뜻의 설천봉(1520m). 주목과 구상나무 고사목이 어우러진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는 600m 남짓으로 설화와 상고대가 핀 나뭇가지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터널을 이루고 있다.

한겨울의 나무터널은 남태평양의 하얀색 산호 군락을 닮았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를 행진곡 삼아 숲길을 걷다보면 이내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진 향적봉이 우람한 풍채를 드러낸다. 죽장망혜 차림으로 쉰셋의 노구를 이끌고 덕유산을 오르던 임훈은 난생처음 보는 주목의 매력에 이끌려 단숨에 향적봉에 선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고 서서 인간세계를 굽어 바라보니 황홀하고 아득하여 대강(大綱)도 종극(終極)도 알 수가 없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덕유산은 전북 무주와 장수, 경남 거창과 함양에 걸쳐 솟아 있는 백두대간 명산이다. 주봉인 향적봉(1614m)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중중첩첩 산등성이 너머로 멀리 경남 합천 가야산과 산청 황매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남덕유산을 비롯해 지리산 천왕봉 등 백두대간 연봉들이 농도를 달리하며 수묵화처럼 겹치고 포개진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계룡산과 칠갑산, 북쪽으로는 속리산이 장쾌한 능선을 그리며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주목은 향적봉에서 1.3㎞ 떨어진 중봉(1594m) 사이의 능선 주변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키 작은 철쭉나무 군락 사이에서 홀로 우뚝 솟은 주목은 임훈의 묘사대로 가지와 줄기가 기괴하기 그지없다.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린 주목, 산 날과 죽은 날이 2000년은 넘어 보이는 아름드리 고사목, 매서운 북서풍에 줄기와 가지가 비틀려도 홀로 꼿꼿한 고사목, 죽은 고사목에서 태어난 2세목 등 500년 전 임훈이 보았던 주목들이 그 자리에서 아직도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재질이 단단한 주목은 목재로서의 가치도 크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주목 베개는 1500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썩지 않고 그대로다. 암행어사의 마패와 고관대작들의 홀(笏)은 물론 고급 바둑판도 주목이 재료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주목 줄기에서 추출한 천연물감은 임금의 곤룡포를 염색하는데 쓰였고, 최근에는 주목 나무껍질에서 택솔이라는 항암물질이 발견되기도 했다.

덕유산 설경은 중봉에서 절정을 이룬다. 나무터널 끝에서 만나는 중봉전망대는 덕유산을 비롯한 백두대간의 형태를 지도처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무룡산과 삿갓봉이 서로 비켜서고 그 뒤로 남덕유산이 우뚝 솟아 있다. 김지하 시인이 ‘나는 저 산만 보면 피가 끓는다’고 한 지리산 연봉도 이곳에서는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북서풍을 타고 온 눈구름이 산행객들의 시야를 가린 채 몇 시간 동안 백두대간 능선에서 은밀하게 조화를 부린다. 이따금 푸른 하늘이 언뜻언뜻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더니 마침내 하늘이 열리고 선경이 펼쳐진다. 가시처럼 단단하고 뾰족한 고사목 가지에 설화가 피고 발아래로는 운해가 바다처럼 펼쳐진다. 파도처럼 굽이치며 흐르는 운해 위로 솟은 섬들은 대둔산을 비롯한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

같은 순백이지만 상고대와 설화는 느낌이 다르다. 가지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꽃이 포근하고 부드러운 순백이라면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상고대는 강인하고 화려한 순백이다. 특히 상고대가 햇살에 반짝이며 토해내는 순백은 겨울산이 연출하는 최고의 미덕이다.

주목은 줄기와 가지가 삭아 부스러질지언정 결코 쓰러지는 법이 없다. 생장 속도는 느리더라도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임훈은 언양현감 시절에 명종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나무가 넘어지려면 뿌리부터 먼저 뽑힌다’며 백성들이 쇠잔해가는 현실을 가슴아파했다. ‘백성이 튼튼해야 나라가 튼튼하다’는 임훈의 대민관은 덕유산에서 만난 주목 고사목으로부터 얻은 깨달음이 아닐까.

무주=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