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한 배호의 노래·삶 재즈로 되살려”… ‘말로 싱즈 배호’ 음반 낸 재즈보컬 말로
입력 2013-01-02 18:26
스물아홉 살 나이에 신장병으로 요절한 가수 배호(본명 배만금·1942∼1971). 누구든 그의 음반을 들어보면 왜 그가 희대의 보컬로 칭송받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음색은 2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묵직하다. 창법에선 기존 트로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윽한 멋이 풍긴다.
재즈 보컬 말로(본명 정수월·42·사진)는 그런 배호를 추억하며 살아온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최근 ‘말로 싱즈 배호(Malo Sings Baeho)’로 명명한 음반을 내놨는데, 앨범엔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돌아가는 삼각지’ 등 배호의 노래 6곡이 재즈로 편곡돼 실려 있다.
그런데 말로는 왜 많은 가수 중 배호의 노래를 리메이크하기로 한 것일까. 전설의 보컬이 부른 명곡을 다시 부르는 데 있어 부담이나 두려움은 없었을까.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말로를 만났다. 그는 “내가 배호를 고른 것이 아니라 배호가 나를 계속 건드렸다”고 말했다.
-많은 가수 중 ‘왜 배호인가’라는 질문부터 하겠다.
“2010년 (배호의 삶을 뮤지컬로 다룬) ‘천변카바레’ 음악 감독을 맡았다. 자연스럽게 배호를 연구하게 됐다. 그의 노래를 다시 들었고, 관련 자료도 찾아봤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 순간 내가 ‘배호 전문가’가 돼 있더라. 음반은 배호에 대한 나의 연구 결과물이자 일종의 논문이다.”
-전설적인 가수의 곡을 다시 부르는 게 부담이 되진 않았나.
“힘든 점이 많았다. 배호의 보컬 스타일이 되게 강하지 않나. 원곡의 느낌을 살리면서 새로운 느낌을 가미해야 한다는 게 힘들었다. 재즈 보컬들이 기존 노래를 재해석하면 완전히 새로운 노래로 틀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내 나름대로는 본래 멜로디나 느낌을 많이 안 틀려고 노력했다.”
-배호의 보컬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노래를 잘하려면 우선 누군가를 카피해야 한다. 노래 잘하는 사람의 가창을 따라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배호는 누구를 모방하는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타고난 가수인 셈이다.”
-1998년 1집 음반 발표 이후 옛 노래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쭉 해왔다. 2010년엔 전통가요 11곡을 재즈로 편곡한 음반도 냈다. 옛 가요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다면.
“최근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작업은 다른 뮤지션들이 많이 하고 있지 않나. 그래서 (최근 노래를 재해석하는 건) 재미가 없다. 가사(假死) 상태에 놓인 곡에 숨을 훅 불어넣는 작업이 즐겁다.”
-타계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배호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 가요와는 다른 배호의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귀를 씻고 있을 때 배호가 요절했다. 그러니 팬들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겠나. 그리고 그의 노래 상당수는 죽음에 임박해서 히트를 쳤다. 드라마틱한 삶이었다. 이런 모든 부분들이 합쳐져서 사람들이 배호를 생각하면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