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넘어 함께하는 우리로 (1)] “결혼이민여성을 웃게 만든건 ‘우리’였다”
입력 2013-01-02 20:54
“둘이서 함께하면 무거운 것도 가벼워집니다. 서로 더 사랑하게 되고 행복과 평화를 얻습니다. 둘이서 함께할 수 있는 당신이 있어 감사합니다. 여기는 YWCA 베트남어방송 꿍야우입니다.”
한국에 온 지 7년째 되는 베트남 결혼이민여성 김빈(28)씨는 한국에서 베트남어 방송 아나운서를 경험했다. 한국YWCA연합회가 결혼이민여성들과의 소통을 넓히기 위해 실시간 인터넷 방송인 아프리카TV를 통해 2011년 1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진행한 1기 YWCA베트남 방송에 참가한 것이다.
또 다른 베트남 결혼이민여성 아나운서인 정다미씨와 함께 짝을 이뤄 월요일 방송을 책임졌다. 두 명이 한 팀이 돼 베트남 결혼이민여성들에게 재미와 정보를 줄 수 있는 내용을 내보냈다. 코너 기획, 대본 작성, 음악 선정 그리고 큐시트 작성까지 모두 이들이 맡았다.
베트남결혼이민여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들은 주부생활과 육아에 초점을 맞추었다. “싱싱한 정보를 원하신다고요? ‘주부싱싱정보’로 오세요!” 선배 주부로서 이들이 경험했던 내용, 인터넷과 매체를 통해 알게 된 알찬 정보들을 베트남 친구들과 마음껏 나눴다. 또 “아이 키우기, 어렵지 않아요!”를 외치며 겨울철 예방접종 방법, 집에서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교육, 육아정보 사이트소개 등 자신이 아이를 키우며 마주했던 중요한 문제를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
아프리카TV는 시청자와 채팅을 통해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방송 중에 베트남이민여성들과 실시간 대화를 나눴다.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남성시청자는 “이 방송을 보며 아내를 좀더 이해하게 됐다”고도 했다. 김씨는 YWCA 베트남어방송을 통해 자기처럼 한국에 온 베트남 친구들에게 위로와 소통의 창구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 하롱베이가 고향인 김씨는 2005년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 2006년 2월부터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한국 와서 처음 3일까지는 이국적 풍경과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로 어린아이마냥 즐거웠어요. 하지만 말도 안 통하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면서 틈만 나면 눈물이 흘렀죠.” 무엇보다 그녀를 괴롭게 했던 것은 뜻밖의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저를 ‘불쌍한 듯’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싫었습니다.”
하지만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삶의 개척자로 나설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생겼다. 바로 임신이었다. “아이가 세상에 나와 처음 눈맞춤을 했을 때 걱정만 하는 엄마보다는 뭔가 해낼 수 있는 의지의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한국말부터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화원종합사회복지관에서 한국어를 배웠고 이것이 인연이 돼 현재 이곳의 다문화코디네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그녀의 이력서에는 한국어 능력평가 중급 자격증은 물론 지난해 9월 딴 임상미술심리상담사 2급 자격증까지 번듯이 기재돼 있다. 이는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그녀의 노력의 결실이다. YWCA베트남어방송 1기 아나운서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그녀의 열정 때문이었다.
낯선 문화와 사람들의 시선에 눈물지었던 그녀는 이제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희망이자 행복이다”라고 말한다. 그녀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그녀를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가족들의 힘이 컸다. 또 그녀의 열정과 꿈을 지켜주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운 복지관의 동료선생님들도 있었다. 김씨는 YWCA 베트남어방송을 후원한 권상범(리치몬드제과 대표), 하기성(일신산업 회장)씨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관심과 용기를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에 힘을 얻는다.
다문화사회라고 하여 거창하게 제도를 만들고 법안을 만드는 것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결혼이민여성들도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 우리의 이웃이라는 인식이 우선이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당신들을 격려하고 함께 하는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것, 그리고 그들과 소통할 창을 언제든 활짝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정서연 한국YWCA연합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