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19년 만의 육성 신년사] 우리정부 비판 내용 없어… 朴 당선인에 유화 제스처

입력 2013-01-01 18:52


북한의 올 신년사는 형식적으로 파격을 보였지만 내용은 기존 노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 개선 기대감과 경제개혁 의도를 은연중에 내비쳤다. 지난해에 이어 한반도 비핵화 실현 등 핵문제 관련 언급을 하지 않은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대남 비방 자제…차기 정부 기대감 반영=신년사에는 우리 정부를 직접 비판하는 내용이 빠졌다. 지난해 신년공동사설에서 ‘준엄한 심판대상’이라며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비판한 것에 비춰, 북한이 차기 정부에 간접적인 유화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대결 상태 해소와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촉구한 대목이 과거의 원론적 입장을 다시 표명한 것일 뿐이라 평가했지만, 차기 정부 출범 직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직접 육성으로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다만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 행동을 제시하진 않았다. 언제든 태도가 돌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천안함 폭침에 따른 대북 제재조치인 5·24조치 해제, 중단된 금강산 관광의 재개 여부 등을 놓고 차기 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우선 두고 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단 지켜보다 (박근혜 정부가) 정책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압력 투쟁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경제에 방점=이번 신년사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은 경제 분야다. 지난해까지 4년간 신년회마다 2∼3차례 나왔던 ‘경제강국’이란 단어가 이번에는 7차례나 등장했다. 반면 지난해 17번이나 언급된 선군(先軍)은 올해 6번으로 감소했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올해 북한의 최대 과제가 경제회복에 맞춰져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를 정복한 그 정신, 그 기백으로 경제강국 건설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자”는 투쟁구호를 제시한 대목에서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현실을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 성공으로 가리려는 의도도 드러냈다.

지난해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경제개혁 방안으로 추진된 ‘6·28조치’의 확대 시행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창조된 좋은 경험의 일반화”라는 구절이 협동농장, 기업소 등에 자율성을 확대하는 6·28조치를 전국적으로 시행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핵문제 침묵, 왜?=북한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비핵화 실현’ 및 ‘핵보유국 지위 확보’ 등 핵문제 관련 언급을 하지 않았다. 2010년과 2011년 신년공동사설에서는 ‘조선반도의 비핵화 의지’를 표명했다. 2년째 핵 문제 언급을 피한 것은 국제사회에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고 주문하는 무언의 압력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4월 헌법을 개정하면서 핵보유국임을 명시했다. 정부 당국자는 “헌법 개정에 이어 지난달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 성공으로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자인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단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일각에서는 북한이 신년사에서 핵보유국임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발 물러선 입장을 내비친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국제사회가 대북제재를 논의하는 마당에 굳이 핵문제를 꺼내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으리란 것이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