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근미] 내가 먼저 모범이 되자
입력 2013-01-01 18:31
새해가 되었지만 덤덤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 차례 심한 열패감에 가슴을 관통당하면 새해라고 그리 화들짝할 게 없다는 의미다.
국가 최고 지도자들이 ‘비리’라는 전통을 굳건히 이어오는 나라의 국민은 새해라고 해서 뭔가를 결심하기가 쉽지 않다. 법을 지켜가며 알뜰살뜰 살아봐야 언제 다시 ‘부패 쓰나미’가 사회 전체를 뒤흔들지 모른다는 불안감만 팽배할 뿐.
폭력의 암울한 휘장까지 사회를 뒤덮고 있으니 열패감이 더 심해지고 있다. 웬만한 폭력적 상황에는 둔감해질 정도로 잔인함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대상을 가리지 않는 성폭력에 묻지마 살인까지, 날마다 들려오는 무서운 소식에 새해가 와도 기지개를 펴기 어려운 실정이다.
보이고 들리는 것들도 심상치가 않다. 정치인들은 TV화면에서 이보다 더할 수 없는 날카로운 말로 상대를 찌르고, 영상에서는 잘생긴 배우들이 짓이기듯 욕을 쏟아낸다. 인터넷 공간은 함부로 배설한 험한 말과 온갖 거짓정보가 뒤섞여 악취를 풍겨대고 있다.
전범(典範)이 없는 사회가 되었다. 도무지 눈을 씻고 봐도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을 찾기가 힘들다. 작은 기대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게 그나마 조금 새로운 현상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번에는 비리사건이 터지지 않겠지”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떡고물을 노리는 가족이 없는 여성 지도자가 등장했으니 이전과 제발 달라지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새해에는 부디 ‘맑은 윗물’이 넘쳐 나와 사회 곳곳의 부패 쓰레기를 정화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치인들부터 상대를 존중하는 품격 있는 말을 써서 영상과 인터넷으로도 좋은 기운이 스며들었으면 한다. 사람들의 마음이 순화된다면 폭력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기대를 해본다.
필립 얀시의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라는 책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하나님 원망부터 하지만, 그 일의 원인을 추적해보면 잘못된 선택의 시초가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어둡고 불안한 사회에 대한 원망이 쏟아지고 있지만, 결국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누구를 탓하지 말고 모두가 모범이 되기로 결심하는 새해이길 소망해 본다.
이근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