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해 넘긴 ‘예산국회’
입력 2013-01-01 18:27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됐어야 할 올해 예산안이 해를 넘겨 처리됐다. 헌법으로 정해진 예산안 처리시한(12월 2일)을 지키지 못한 것은 물론 해를 넘긴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정치쇄신’ 구호만 요란했지 19대 국회도 과거 국회와 별반 다르지 않으니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정기국회를 시작하면서 “대통령 선거 일정을 감안해 내년 예산안을 11월 22일까지 처리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정기국회와 대선이 끝난 뒤에도 여야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민생공약을 반영할 6조원 증액 여부와 국채발행을 놓고 첨예하게 맞섰다. 결국 2012년 마지막 날까지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대립이 계속됐고, 막판에는 제주해군기지 예산 처리문제로 해를 넘기고 말았다.
헌법 54조 2항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국회는 2003년부터 10년째 이 기한을 지키지 않았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헌법을 지키지 않고 있으니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올해부터는 헌법상 예산안 처리시한의 48시간 전까지 예결위에서 예산안 심사가 끝나지 않으면 국회 본회의에 자동 회부된다. 고질화된 예산안 늑장처리를 막기 위한 국회선진화법이 발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의장석을 점거한 채 육탄전도 불사하는 게 대한민국 국회 모습이니, 여야가 본회의에서 장기대치하면 이마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여야가 나라살림살이를 제대로 살피기는커녕 당리당략에만 매몰돼 엉뚱한 곳에 혈세를 퍼준 것도 유감이다. 정부와 버스업계, 교통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정해 1조9000억원의 재정을 지원하는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은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역구를 챙기기 위한 의원들의 ‘쪽지예산’ 구태도 볼썽사납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지역구인 대전의 숙원사업 ‘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사업’과 관련된 부지매입비 예산을 살뜰히 챙겼다. 새누리당 예결위 간사인 김학용 의원은 지역구인 안성 금석천 44억원, 안성 제2산업단지 6억원을 증액했다. 민주당 예결위 간사인 최재성 의원은 지역구 숙원사업인 의정부법원 남양주지원 설치 26억원과 한우플라자 건립사업 20억원을 반영시켰다.
이런 식의 구태를 반복한다면 국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정치권은 지난 1년 동안 ‘안철수 현상’이 국민들 사이에서 왜 그렇게 큰 공감을 얻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헌법을 무시하고 나라살림 관리보다 지역구 표관리만 하는 국회라면 국민들의 신뢰를 영영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