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강국 싱가포르를 가다] 라이 쳉 래플스 고등학교 교장 “노력해야 현실 극복”
입력 2012-12-31 18:20
“싱가포르가 맞닥뜨린 도전은 47년 전 독립 당시와 전혀 다르다. 늘어나는 이민자들과 외국 인재들의 유입으로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 ‘싱가포르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래플스 고등학교(Raffles Institution) 교장 림 라이 쳉(사진)은 국가 지도자들을 무수히 배출한 학교의 수장답게 학생들에게 어려서부터 국가통합과 글로벌 마인드를 기를 것을 강조했다. 지난 21일 래플스 교정에서 그를 만나 싱가포르 교육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싱가포르의 엘리트 위주 교육시스템은 누구에게나 고른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에 사회통합을 방해한다는 비판이 있다.
“싱가포르가 독립하면서 리콴유 당시 총리가 말레이시아의 교육방법을 따르지 않기로 한 것은 누구나 노력한 만큼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덕분에 부모 세대는 가난했지만 우리 세대는 많은 기회를 가졌다. 해외유학도 하고 좋은 직장도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은 빈부격차가 심하다.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기회도 동등하게 갖지 못한다. 과외를 하지 못하면 시험을 잘 칠 수 없고 그러면 래플스에 오지 못한다. 래플스는 이런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가능성이 보이면 전액 장학금과 용돈까지 준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칙은 여전하다. 열심히 노력해야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 싱가포르 정부가 항상 말하는 원칙 중 하나는 ‘아무도 당신 삶에 대한 빚을 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가 모든 것을 돕진 않는다.”
-한국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교육이 암기식 위주에서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시험 자체가 많이 달라졌다. 응용문제들이 많아졌고 프로젝트 수업이나 리서치 활동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더 이상 암기 위주의 학습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 오히려 창의력에 의존하던 서구 사회가 다시 집중력과 훈육에 중점을 둔 교육으로 돌아오고 있다. 적당한 균형이 중요하다. 교육에서 혹독한 열심과 몰입이 빠져선 안 된다. 1990년대는 모든 것이 능력 위주로 평가되었고 교장들은 혁신 훈련을 받았다. 요즘은 도덕과 인성 훈련이 중시되고 있다. 교육시스템이 진화해나가는 과정이다. 서구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쉬운 과정을 많이 택한다. 심각한 공부에 자신이 없어서이다. 래플스 학생들의 90%는 이과를 선택한다. 어렵고 힘든 공부를 이겨내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학생들이 공부에 대한 흥미가 높은 이유는.
“싱가포르는 교과목과 함께 진행되는 커리큘럼이 학생들 시간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절반에 그친다. 나머지 시간은 비교과 활동에 쓴다. 스카우트, 문화예술, 스포츠 등 활동이 일주일에 5번씩 있다. 그밖에 지역사회 활동을 하고 개인 사생활도 필요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부에 대한 높은 압박감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환경이다. 그냥 재미있어서 학교생활을 하기는 힘들다. 시험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아직 아시아의 교육시스템은 딱딱하고 단호하다. 싱가포르에서도 학생들의 삶은 쉽지 않다.”
싱가포르=전석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