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6·25전쟁 참전 美 윌리엄 웨버씨 “한반도 갈등의 60년 끝내야 할 때”
입력 2012-12-31 21:10
“한국에서 만 60세 되는 생일을 회갑·환갑이라고 한다고 들었다. 이것은 한 흐름이 끝나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한국전 정전 60주년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갈등의 60년이 끝나고 평화가 열리기를 바란다.”
6·25전쟁 참전 용사인 윌리엄 웨버(87)씨는 지난해 말 미국 메릴랜드주 뉴윈저의 자택에서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를 평화에 대한 기원으로 시작했다.
웨버 씨의 한국전 체험담 중 빈번히 나오는 단어가 ‘피바다(bloodbath)’였다. 한국군과 미군, 중공군과 북한군의 피해는 물론 민간인 피해도 엄청났다고 했다. 구체적인 통계도 제시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6·25에 참전했다 사망한 미군은 5만4246명, 실종자 8200명, 부상자는 10만3284명이다. 미군이 해외에서 싸운 전쟁 중 한국전은 사상자 비율이 9명 중 1명꼴로 가장 높았다. 중공군 참전 후 38선을 경계로 일진일퇴의 참호전이 2년 이상 끌면서 사상자가 폭증했다고 웨버 씨는 말했다.
17세이던 1943년 직업군인으로 미 육군에 입대, 2차 대전 당시 태평양전선에도 참전했던 웨버씨는 1950년 8월 육군 187 공수 낙하산부대의 대위로 인천 상륙작전과 함께 한국땅에 첫발을 디뎠다.
서울 탈환뒤 북진하면서 중공군이 개입할 때까지 웨버 대위는 평양을 비롯한 북한의 주요 거점지역을 장악하는 작전에 투입되며 승전보를 울렸다.
하지만 1951년 1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중부전선이 최대 격전지로 변하면서 웨버 대위는 전략적 요충지였던 강원도 원주를 사수하는 전선에서 싸우다 북한군이 던진 수류탄에 오른쪽 팔꿈치 밑과 오른쪽 무릎 아래를 잃었다.
그는 “팔과 다리를 잃으면서 나의 전쟁은 끝이 났다”면서 “원주 전투는 워낙 치열해서 부대원 42명이 숨지고 64명이 부상했지만 사흘 밤낮 계속된 중공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우리는 고지와 강을 지켜냈다”고 회상했다.
개인적으로는 신체적 불구의 고통을 안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쟁일 수 있지만, 웨버씨는 한국전 참전을 영예롭게 여기며 각종 강연 활동에 나서고 숨진 참전용사를 추모하고, 한국전을 기념하는 일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다.
웨버씨는 정전 60주년을 맞아 야심적인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정전일인 7월27일을 전후해 워싱턴DC 한국전참전기념비에서 전투 당시 희생된 미군과 한국군, 카투사(주한미군에 배속된 한국군)들의 이름을 모두 호명한다는 것이다. 참전 미군과 한국군, 한인 교포 고등학생들이 참가하는 데 모두 30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시작하면 밤이든 낮이든 끊이지 않고 ‘호명 행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참전 군인들이 고령으로 하나 둘 사망하면서 잊혀져 가고 있는 한국전의 의미를 되새기고,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원을 담은 행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87세의 고령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열정과 활기를 보이는 웨버 씨에게 건강의 비결을 묻자 “하나님이 한쪽 팔과 다리를 가져가시는 대신 나에게 평안한 휴지기를 오래 주시는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메릴랜드주 뉴윈저=글·사진 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