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中, 한국전 참전 정당화 자료 수집·연구 활동
입력 2012-12-31 18:13
신의주와 맞닿은 북·중 국경도시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는 항미원조전쟁 때 핵심 요충지로 병참기지 기능을 했다. 단둥 시민들은 이를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다. 이에 따라 그들은 ‘영웅적인 인민’으로 칭송되고 있다.
단둥에 ‘항미원조정신연구회’가 있는 건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항미원조정신연구회는 전쟁 60주년을 맞아 2010년 6월 25일 결성됐다. 항미원조전쟁 관련 연구 활동을 하는 단체로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츠하오톈(遲浩田) 전 정치국위원과 조선족으로 전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지낸 조남기(趙南起) 상장(대장)이 명예회장으로 있다. 단둥시 선전부장 덩바오취안(鄧寶勸)이 회장직을 맡고 있는 데서 보듯 단둥시 관할 아래 있다. 이 단체 홈페이지(www.ddkyh.org)에는 전쟁 당시 희귀 사진 등 각종 자료가 올라 있다.
이 단체가 발표한 ‘항미원조전쟁의 의의’라는 문장은 “이 전쟁은 중국이 미국과 군사 정치 경제 외교 분야에서 전면적으로 대결한 것”이라며 “전쟁 승리를 통해 중국은 대국의 지위를 확립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 다르지 않다. 이 문장은 또 “맥아더 장군이 북한을 멸망시키려고 했을 뿐 아니라 중국, 소련과 전면전도 불사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참전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다.
항미원조정신연구회가 수집한 자료 중에는 “미군이 6·25 전쟁 중 독충이 포함된 세균탄을 북한 지역에 투하했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 군사과학원이 펴낸 ‘항미원조전쟁사’도 사진과 함께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미국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조남기 상장은 시나 웨이보의 항미원조정신연구회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1950년 10월 19일 펑더화이 사령관과 함께 압록강을 건넌 뒤 58년 10월 25일 맨 뒤에 철군하는 부대와 함께 귀국할 때까지 8년 동안 전쟁의 모든 과정을 경험했다”고 회고했다.
한편 중국인민지원군은 50년 10월 25일 공식적으로 북한에 진주하기 전 비밀리에 북한 지역 압록강 남쪽에 들어가 전투를 수행했다고 국영 CCTV가 전했다.
CCTV는 최근 다큐멘터리 채널로 방영한 중국 고사포부대의 활약에 미 공군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내용의 ‘악전고투한 극동 공군’ 5부작 다큐에서 고사포 524연대 전사 뉴완리(牛万里)의 이러한 증언을 방영했다. 뉴완리는 “중국 군대임을 알 수 있는 모든 표지를 제거했을 뿐 아니라 사진, 일기 등 소지품도 버리고 북한으로 진주했다”고 말했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