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워싱턴 시각… 美 ‘亞 중시’ 외교전략 맞물려 대대적 기념

입력 2012-12-31 21:20


지난해 7월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6·25 정전 59주년 기념식은 처음으로 미국 정부 주최로 열렸다. 그동안에는 민간 참전군인 단체들이 주관했었다.

올해 정전 60주년 기념식은 더욱 성대하게 치러진다. 이를 위해 미 의회는 2011년 국방수권법에 ‘한국전 정전 60주년 기념위원회(60주년 위원회)’를 국방부 산하에 설치해 준비 작업을 총괄하게 했다. 60주년 위원회의 임무는 한국전 참전군인의 희생과 기여를 기리고, 주요 기념행사를 주관하며, 미국인들에게 한국전의 의미와 중요성을 교육하는 것으로 돼 있다.

아울러 지난해 11월 미 상원은 2013년을 ‘한국전 참전군인의 해’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 정부와 의회가 정전 60주년에 얼마나 의미를 두고 있는지 가늠케 한다.

이는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천명한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새 국방·안보전략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미국은 이 전략이 세계의 새로운 발전동력으로 비중이 커지고 있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급속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한 주요한 축이 미·일, 한·미 동맹인데 최근 일본의 경제력과 국제적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다. 미국으로서는 탄탄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이 갈수록 절실한 시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전은 한국과 미국 양국이 엄청난 인적·물적 희생을 하며 공산주의 세력과 맞서 싸웠던 ‘공동의 기억’으로 되새길 가치가 크다. 정전 60주년은 또한 미래에 한·미 동맹을 어떻게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를 함께 숙고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가 올해 본격 논의될지도 주목된다. 당초 2010년 오바마 행정부는 60주년을 계기로 한 평화협정 체결에 조시 W 부시 행정부보다 전향적인 입장이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2009년 7월 비핵화에 대한 대가로 미·북 수교,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 대북 경제지원 등을 시사한 바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노선,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으로 진전되지 못했다.

지난해 말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당분간 평화협정이란 단어 자체를 꺼내기가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이사장은 “미 정부와 의회에 북한이 어떤 약속을 하더라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팽배하다”며 “평화협정의 전제조건인 비핵화는커녕 6자회담 개최 논의도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60주년 위원회는 정전 기념일에 거행될 구체적인 행사와 일정에 대해서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 보훈청 등 미국의 다른 부처와 공동으로 워싱턴에서 ‘대규모’ 행사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가에서는 기념식에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미국 측이 기념식장으로 알링턴 국립묘지와 내셔널 몰의 한국전 참전기념관 두 곳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국 교포들도 참전군인을 중심으로 기념행사를 준비 중이다. 이병희 재향군인회 미 동부지회장은 “카투사(미 육군에 배속된 한국군)들도 큰 희생을 치렀지만 미군도 한국군도 아닌 모호한 신분 등으로 아무런 기록이 남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번 기념행사는 카투사들의 기여도 재조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60주년 위원회의 데이비드 클라크 국장(대령)은 “정전 이후 찾아온 평화는 한국이 세계 지도적 국가로 발돋움하고 번영하는 데 초석이 됐다”며 “참전군인과 가족들의 희생과 손실을 위로하고 한국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질 높은 행사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