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南 재래식 병력 앞서지만 비대칭전력 열세… 60년 남북 군사력 경쟁

입력 2012-12-31 18:28


정전협정이 맺어진 후 60년간 남북은 치열한 군사력 증강 경쟁을 벌였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 상태에서 군사력은 국가 안위를 보장해줄 수 있는 기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정전협정 당시 한국군은 병력 10만5752명에 1100여문의 곡사포와 대전차포, 28척의 경비함, 연습기 22대를 보유한 허약한 군대였다. 병력과 전력 면에서 북한에 크게 뒤졌다. 60년인 지난 지금 우리 군 병력은 63만9000여명으로 6배가 늘었다. 육군은 다연장포를 포함한 야포 5300여문을 보유하고 있다. 60년 전 1대도 없던 전차는 2400여대, 27대에 불과했던 장갑차는 2700여대를 갖췄다.

해군은 우수한 탐지능력을 지닌 한국형 이지스함(7500t급) 3척을 포함해 120여척의 전투함을 보유하고 있다. 정전협정 당시 훈련기 22대뿐이어서 미군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공군은 훈련기 190대와 F-15K를 포함한 460여대의 전투기를 가진 정예공군으로 성장했다.

한국군의 전력 강화는 1965년 베트남전쟁 참전 이후 본격화됐다. 당시 무기생산 기반이 구축되지 않았던 한국은 ‘브라운 각서’를 체결해 미국에서 상당량의 장비를 지원받기로 했지만 구형 M48 전차와 M16 소총 제공에 그치는 등 미미했다. 68년 북한 특수군의 청와대 기습사건과 69년 ‘닉슨 독트린’으로 자주국방의 필요성이 커지자 정부는 74년 ‘국방개혁 8개년 계획’을 세우고 81년까지 진행된 1차 율곡사업을 시작으로 꾸준히 전력 증강을 추진했다. 2011년까지 38년 동안 투입된 예산은 121조5191억원에 달한다.

정전협정 당시 북한은 병력 19만8360명에 2900여문의 곡사포와 대전차포, 54대의 장갑차, 242대의 전차, 211대의 전투기와 전폭기를 갖추고 있었다. 이후 60년 만에 병력은 119만여명으로 늘었고 다연장포·방사포 4800여문, 야포 8600여문, 전투함 420여척, 전투기 820여대를 확보한 상태다.

62년 ‘4대 군사노선’을 채택한 북한은 국가예산의 30% 정도를 매년 전력 증강에 투입했다. 70년대 들어 자체 무기체계 개발능력을 확보해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분야에 집중 투자했다. 2차례 핵실험과 5차례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 시험을 통해 핵무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조 기술을 개발해왔다. 한 군사전문가는 “재래식 전력은 한국군이 일부 앞서 있지만 핵과 미사일 등 비대칭 전력에선 크게 열세”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지 않는 한 60년간 지속돼온 남북 전력증강 경쟁이 완화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