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韓國號의 새해 소망

입력 2012-12-31 17:07

지난해 2월 난생처음 성지순례에 나섰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통곡의 벽(Wailing Wall)’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날은 마침 유대교의 안식일이어서 ‘통곡의 벽’이 있는 경내에서는 사진 촬영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소원이나 기도 제목을 적은 종이쪽지를 접어서 벽 틈에 끼워 넣고 기도하는 것만 허용된다고 했다.

기자도 가족의 바람을 종이쪽지에 적어 벽 틈에 밀어 넣었다. 그 제목대로 이뤄지게 해 달라고 ‘통곡의 벽’에 양손을 대고 머리 숙여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 살펴보니 벽 틈새에는 글쪽지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종이쪽지도 제법 많았다. 아마 다른 사람이 글쪽지를 밀어 넣는 바람에 밀려서 떨어진 것이었으리라.

주변의 눈을 의식해가며 조심스레 여남은 개를 주워서 펴 보았다. 대부분은 내용을 알 수 없는 글자들이었다. 다시 여남은 개를 주워서 살피다가 영어나 독일어로 된 것을 서너 개 발견했다. 무척 반가웠다. ‘저희 가족이 행복하게 해 주세요.’ ‘우리 가족이 건강하게 해 주세요.’ ‘서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얻게 해 주세요.’

‘이 세상에서 분쟁이 없게 해 달라’는 식으로 세계 평화를 갈구하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소소한 일상에서 가족의 행복과 건강 등을 바라는 내용이었다. 성지순례를 위해 예루살렘을 찾은 전 세계 많은 기독교인들의 바람은 아주 소박한 것이었다.

우리 국민의 소망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은 주요 과목만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적성에 맞는 교육을 받기를 기대하고, 청년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간절히 원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만큼은 아니더라도 일한 대가를, 돈 쓸 곳이 많은 베이비부머(1955∼63년생)들은 정년 연장을 바랄 것이다. 불우한 이웃은 최소한의 삶의 보장을, 노인은 건강하고 안락한 노후를 고대할 것이다. 북유럽 선진국처럼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장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사람답게 살기를 기대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12·19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 입문 15년 만에 대한민국호(大韓民國號) 선장에 뽑혔다. 아마 박 당선인의 인생에서 최대 꿈을 이룬 것이리라. 박 당선인은 자신을 지지한 51.5%가량의 유권자보다 훨씬 많은 국민이 행복해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 소망을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도 안고 있다. 박 당선인의 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